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분명하지 못하고 어렴풋한 것을 ‘희미(稀微)하다’라고 말합니다. 아련하고 아리송한 것과는 가깝고 생생하고 확연한 것들과는 먼 상태를 뜻합니다. 제 인생에서 희미한 것의 중요성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아마 마흔 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즈음에 오랜 타향살이도 막을 내렸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한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있는 듯한, 안도감과 불안감이 적당히 섞인, 밝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은, 묽고 부드러운 어떤 느낌이 제 주변을 싸고돌았습니다. 그야말로 희미한 것들이었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었습니다. 어두운 불안감은 20, 30대의 상처들이 남긴 여진(餘震)과 같은 것들이었고 밝은 안도감은 앞으로 전개될 탄탄한 미래에 대한 기대감일 것이라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방금 컵에 채워진 시원한 맥주 거품에 입술을 갖다 댄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본체(本體·사물의 정체)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지만 그것에 방불(彷佛)한 실체감을 가진 그 어떤 징조들이 저를 고양(高揚·정신이나 기분 따위를 높이 북돋음)시켰습니다. 아무튼 지금 생각해 보면 제 인생에서 흔치 않게 ‘좋았던 한 시절’이었습니다.

그 무렵의 경험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장자(莊子)』의 ‘인기지리무신(閵跂支離無脤:절름발이에 꼽추에 언청이인 사람)’입니다. 그 대목을 읽고 큰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 전에도 『장자(莊子)』를 읽은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새로 나온 책 광고에 유혹되거나, 다른 책을 읽다가 선후(先後)가 궁금해지는 대목을 만날 때마다 다문다문 읽곤 했습니다. 우의(寓意)의 신선함에 매료되기도 했고 몇 마디 촌철살인의 경구(警句)를 만나는 즐거움도 컸습니다. 이를테면, 호접몽(胡蝶夢·장주가 나비꿈을 꾸는가 나비가 장주 꿈을 꾸는가?), 산목(山木·산에 있는 나무 중 못생긴 것이 오래 살아남는다), 목계(木鷄·나무로 만든 닭처럼 싸움닭이 허장성세를 아주 버리는 경지에 도달한다), 포정(庖丁·19년간 칼을 써도 오늘 칼을 간 듯하다), 설검(說劍, 칼에는 서인지검, 제후지검, 천자지검의 경지가 있다. 칼을 늦게 뽑아서 먼저 상대를 치는 데 검술의 요체가 있다) 같은 것들이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기지리무신’은 좀 달랐습니다.

…인기지리무신이 위나라의 영공(靈公)에게 의견을 말했더니 영공은 그의 말에 아주 흡족해 했다. 그 뒤로는 영공이 보기에 온전한 사람을 보면 오히려 그들의 목이 야위고 가냘프게 보였다(而視全人 其?肩肩)….[『장자(莊子)』 「덕충부(德充符)」]

사람의 진가(眞價)는 외형에 있지 않고 내적인 성취에 달려있다는 것, 그리고 인간의 눈은 자신의 기분이나 취향에 따라서 때로는 볼록렌즈도 되고 때로는 오목렌즈도 된다는 것을 시의적절하게 비유하고 있었습니다. 그 가르침이 저의 폐부를 찌르고 들어왔습니다. 저의 편벽(偏僻)과 편애(偏愛)가 크게 반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반발심을 일으킨 대목도 있었습니다. ‘인기지리무신’은 임금에게만 인정을 받은 게 아니라 뭇 여성들에게도 큰 인기가 있어서 그가 초야에 묻혀 살 때도 “경성(京城) 고관대작의 정실부인이 되느니 차라리 시골에서 그의 첩으로 살겠다”라는 여인들이 줄을 섰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뭇 남성들의 ‘하는 일 없이 사랑받기를 원하는’ 나르시시즘이 반영된 것으로 읽었습니다. 그래서 ‘하는 일 없이 사랑받고자 하는’ ‘인기지리무신’의 후예들을 맹렬히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최소한 지식인의 사회적 실천은 ‘인기지리무신’이어서는 안 된다고 이 지면에서도 쓰기도 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누릴 것은 다 누리면서 편애받기를 원하는 자들은 진정한 지식인이 아닙니다. 지금 왜 또 ‘인기지리무신’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희미하게 어떤 느낌은 잡히는데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군요.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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