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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장] 1. 포스코 김공영 철강명장
[명장] 1. 포스코 김공영 철강명장
  • 이종욱 기자
  • 승인 2019년 08월 27일 19시 39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8월 28일 수요일
  • 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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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서 이론·기술 융합해야 '최고의 제품' 만들 수 있어
대한민국 명장이자 포스코 명장인 김공영씨는 32년간 쇳물과 함께 해 왔지만 오늘도 새로운 미래를 향한 도전에 나선다. 그의 터전인 포항 STS4제강공장에 선 그의 왼쪽가슴에 포스코명장 휘장이 빛난다.

‘세계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쇳물을 뽑아내는 곳은 포스코가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는데 정말 과분한 명예까지 따라와 자랑스럽기도 하고 송구스럽기도 합니다.’

지난 2015년 만 47세의 나이에 고용노동부가 대한민국 37개 직종 97개 분야에 걸쳐 최고의 기술장인에게 수여하는 금속재 생산 직종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된 포스코 포항STS제강부 4제강공장 파트장 김공영씨(51)의 말이다.

그는 최근 포스코가 전체 직원 중 세계 최고수준의 전문성과 노하우를 갖춘 사람에게 부여하는 ‘포스코 명장’으로 선정되는 영예까지 함께 안았다.

포항제철공고 입학 후 ‘철강 명장’의 꿈을 부풀려왔던 그는 지난 1987년 포스코에 입사한 뒤 2년도 되지 않아 포스코가 전략적으로 도전한 스테인리스(STS)부로 재배치되면서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밟게 된다.

그리고 30년. 그의 인생은 스테인리스로 시작해 스테인리스로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뜨거운 여름 햇살이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그를 만나 여름보다 더 뜨거운 쇳물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가난과의 싸움이 명장의 길로

지난 1968년 경남 산청에서 태어난 김명장은 아버지가 일자리를 찾아간 전북 김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함경남도 원산 출신인 아버지는 한국전쟁 당시 혈혈단신으로 남한으로 내려와 결혼을 했지만 마땅한 일자리도 갖지 못한 채 농번기에는 소작농으로, 농한기에는 서울 등지로 떠나 일일 노동꾼으로 7남매를 어렵게 키웠다.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김공영 씨는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공부를 곧 잘해 대학을 졸업한 뒤 행정고시를 거쳐 공무원이 되는 게 꿈이었지만 먹고 살기에도 빠듯한 현실은 그를 다른 길로 이끌었다.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던 중학교 3학년 어느 날 우연히 포항제철공고 입학전형 공고를 본 그는 ‘어려운 형편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는 기술자가 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포항으로 왔고, 고교 졸업 후 포스코에 입사하면서 철강인의 됐다.

하지만 포스코에 입사한 뒤에도 공무원이 되겠다는 꿈을 버리지는 않았다.

입사 초기 3조 3교대의 빡빡한 근로조건 속에서도 하루 3~4시간만 잠을 자며 공부에 몰두했고, 월급의 30% 정도는 무조건 책을 사 읽으면서 ‘언젠가는 행정고시에 도전한다’는 꿈을 키웠지만 그의 운명은 STS쇳물인생으로 이끌려 갔다.

□포스코 입사, 신사업 스테인리스부로 재배치

김 명장은 포철공고 2학년 재학 당시 연봉학 포스코 1호 기성(技聖·포스코 명장제도의 전신) 초청강연에서 “기술에는 두 가지가 있다. 장인적(匠人的) 기술과 학문적 기술인데 학문적 기술은 장인적 기술과 어울려서 현장성을 확보하게 되고, 장인적 기술은 학문적 기술의 도움을 받아 기술의 객관성, 기술자산의 사회적 공유를 이룰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 ‘나도 기성이 돼야 겠다’는 꿈을 세웠다.

그리고 1987년 포스코에 입사한 김공영 명장은 전로부서로 배치돼 산업현장에 첫 걸음을 내디뎠다.

그러나 입사 후 ‘빨리 일을 배우고 싶다’는 욕심은 크고 작은 사고를 일으켰고, 어느 날 면허도 없이 가탄재를 실은 지게차를 운전하다 전원케이블을 파손시켜 해당 설비가 4시간이나 중단되는 대형 사고를 쳤다.

이 사고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관찰하고 점검하는 평생 습관으로 이어져, 안전한 작업현장을 만들어가는 밑거름이 됐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던 김 명장은 1989년 포스코가 야심 차게 준비해 온 STS제강부로 차출됐고, 그것은 김 명장이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던 공직자로서의 길 대신 쇳물인생으로 이끄는 운명 같은 만남이었다.

“스테인리스강 가격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소재는 니켈인데 t당 5000 만원이 넘을 때도 있었으니 작업자의 능력에 따라 제조원가가 크게 달라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작업자의 기술력과 의지에 따라 품질변화는 물론 회사 발전에 직접 적으로 기여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마도 저의 성격과 궁합이 맞았던 모양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궁금한 것은 참지 못했던 김 명장은 당시 최고가의 소재를 사용하는 STS부로 옮기면서 일과 공부에 파묻혀 살았다.

그리고 스테인리스부로 옮긴 지 5년 여가 지난 어느 날 기술 명장을 향한 첫 걸음을 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STS재취련 과정에서 특정작업을 할 때마다 불량이 발생한다는 것을 확인한 그는 현상과 이론을 두루 살펴보며 원인 찾기에 나서 결국 재취련 과정에서의 공정상 문제를 찾아냈고, 이를 해결하면서 포스코 STS품질이 급상승하는 작은 밑거름이 됐다.

“제가 모든 문제를 푼 것은 아니지만 이 과정을 통해 현장에서의 기술과 학문적 이론은 결코 분리돼서 안된다는 것을 감슴에 새기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저 자신부터 기술만 익히는 게 아니라 이론적 바탕도 채워야 한다는 생각에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계기가 됐다고 봅니다.”

이후 김 명장은 제품 품질은 이론 있어도 되지 않고, 현장만 있어도 불가능하다는 지론 아래 현장기술과 이론적 바탕을 융합시키기 위해 항상 책을 끼고 살게 됐다.

그는 “처음부터 이론적으로 완성되는 기술과 제품은 없다고 봅니다. 이론적 바탕 아래 기술을 접목시켜야만 최고의 제품이 만들어 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장에서 이론과 기술을 융합시키는 매개체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해 온 것이 대한민국 명장과 포스코 명장이라는 영예스런 자리에 올라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대한민국 명장이자 포스코 명장인 김공영씨는 32년간 쇳물과 함께 해 왔지만 오늘도 새로운 미래를 향한 도전에 나선다. 특히 전로 앞에 선 그의 눈은 매의 눈보다 더 날카롭게 빛난다.

□대한민국 명장 그리고 포스코 명장

STS제강부로 옮기면서 기술과 이론은 융합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았던 김 명장은 한층 더 많은 시간을 일과 공부로 채워 넣었다.

특히 2013년 지금 맡고 있는 STS 4제강공장 건립 당시 당초 목표했던 가동일이 지났음에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자 그야말로 자신의 모든 것을 일에 바쳤다.

일과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도 가족들보다는 공장 가동이 제때 이뤄지지 못하는 원인을 찾는데 몰두하다 보니 부인으로부터 ‘당신이 일 밖에 모르니 나는 뭐하느냐’는 타박 아닌 타박도 듣기 일쑤였다.

그는 “솔직히 저는 일과 공부가 취미이고 여가생활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당구나 볼링·스키·골프 등 여가나 취미생활을 해보지 못했습니다. 그게 가족들에게 참 미안한 마음입니다.”라고 웃는다.

그렇게 일과 연구에 몰두한 결과는 한국 철강기술에 있어 엄청난 것으로 승화됐다.

그가 이룬 대표 기술들만 살펴보면 △노체 수명을 5배 이상 늘리고, 주조래들 수명을 30%가량 늘리는 주조래들 장수명화 기술, STS 저취전로 환원재 저감조업 및 노체관리 기술(관련 특허 9건·노하우 11건) △STS제강 전로 온라인 노구 지금(地金·슬래그와 쇳물 혼합물) 용해기술을 통한 생산성 향상 등 헤아리기도 쉽지 않다.

직무 노하우 11건은 외부에 특허를 내지 않았지만 직무 수행과정에서 쌓아온 특허성 노하우를 말한다.

또한 철야금기술사·제강기능장·산업안전기사 ·기계정비산업기사 등 STS제강에 필요한 기술자격증 역시 서랍 한 켠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30년간 STS제강 기술향상에 기울여 온 끝에 지난 2015년 고용노동부가 인정하는 최고 기술자에게 주어지는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됐으며, 올 8월 포스코 기술인의 최고 자리인 ‘포스코 명장’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대한민국 명장’과 ‘포스코 명장’은 기술인으로서의 끝자리가 아니라 새로운 도전을 향한 시작점일 뿐이다.

“요즘 젊은 후배들이 모든 가치의 기준을 ‘돈’에 맞추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배울 의지가 없고 이론적 기반이 없으면 기술향상은 불가합니다. 이제 제가 해야 할 일은 후배들이 최고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고 멘토로 활동하는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는 그는 요즘 재료공학에 빠져 있다.

이 역시 자신이 몸 담고 있는 STS강의 재질 특성과 용접 특성 등을 연구해 한 단계 더 높은 품질의 STS강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고, 그 연구의 일부는 공개할 수 없지만 포스코에서만 생산할 수 있는 용접 후에도 녹이 슬지 않는 STS강 생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다시 태어나도 철강기술인이 될 것이냐’는 질문에 “제 어린 시절 꿈은 공무원이 돼 사람들에게 직접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철강은 직접 도움을 주는 방법은 없잖아요? 그래서 다시 태어나면 저는 그 꿈을 이루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는 오늘 아침에도 눈을 뜨자 말자 전날 조업실적을 되살피고,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며 바쁜 걸음을 옮겼다.

‘새로운 날, 새로운 기술, 새로운 꿈을 향해...’

△대한민국 명장이란

대한민국 명장은 숙련기술장려법에 산업현장에서 최고 수준의 숙련기술을 보유한 기술자로서 숙련기술 발전 및 숙련기술자의 지위 향상에 크게 공헌한 사람을 대상으로 선정한다.

현행법상 37개 분야 97개 직종 분야 중 15년 이상 동일업종에 종사하면서 △숙련기술 보유정도가 높은 사람 △신청직종 숙련기술 발전을 위한 성과가 우수한 사람 △숙련기술자 지위 향상을 위한 성과가 우수한 사람△신청 직종의 산업화 및 현대화 실적이 우수한 사람(공예분야만 해당)에게 부여된다.

대한민국 명장은 매년 35명 정도 선정되며, 신청서를 접수한 뒤 서류검토 및 현장실사를 거쳐 ‘대한민국명장심사위원회’에서 최종 선정한다.

2019년 현재 대한민국 명장은 644명이 선정돼 있으며, 경북·대구지역에는 모두 100명(경북 44명·대구 46명)의 명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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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욱 기자 ljw714@kyongbuk.com

정치, 경제, 스포츠 데스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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