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인문학] 가을 걷기
[돌봄의 인문학] 가을 걷기
  • 최영미 시인·포항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 승인 2019년 08월 29일 17시 45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8월 30일 금요일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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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최라라)시인·포항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최영미(최라라)시인·포항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최영미(최라라)시인·포항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그 무덥던 여름이 꼬리를 감추기 시작했다. 아침저녁으로는 창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기온이 낮아졌고 한낮의 태양도 여름의 뜨거움을 잃었다. 하늘은 높아졌고 대추나 사과 같은 것들이 붉스레한 빛을 띠기 시작했다. 여름이 끝나기도 전부터 피기 시작하던 코스모스가 제 빛깔을 완연히 찾아서 하늘거리는 풍경이 눈에 띄기도 하고 짙푸른 녹음으로만 일관할 것 같던 나뭇잎들도 안 웃는 듯 웃는 입처럼 붉은빛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바야흐로 천고마비의 계절이 되었다. 시끄러운 세상의 일은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계절은 저의 순환을 지키고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이럴 때 잠시 눈을 돌려 우리도 가을 속으로 한번 걸어 들어가 보면 어떨까.

가을을 속속들이 만끽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가을 속에서 걸어보는 일일 것이다. 걷다 보면 담장 밑에서 자라던 풀이 맺은 열매와 그 열매가 만들어 놓은 가을 길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며, 그 무더운 여름을 말없이 건너온 가로수의 고단한 숨소리와 그들이 겪었던 여름의 소나기에 대해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른 세계를 돌아온 바람이나 산새의 이야기를 피부로 느낄 수도 있을 것이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남기는 싱그러운 웃음소리도 가슴에 담아올 수 있을 것이다.

걷기는 두말이 필요 없는 최고의 운동이다. 걸으면서 생기는 온몸의 근육 강화 효과는 차치하고라도 깊게 쉬는 숨은 폐 기능을 강화 시켜줄 것이며 가을 햇살을 받음으로써 많은 양의 비타민 D가 흡수되고, 이것은 결국 칼슘의 체내 합성을 도와 뼈를 튼튼하게 해줄 것이다. 쨍쨍한 가을 햇살이 주는 경쾌함은 엔돌핀 생성을 자극하므로 기분이 좋아지는 효과를 누리게 될 것이며 뇌 기능이 활성화되면 치매나 우울증을 예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다 지나가는 사람과 따뜻한 눈인사라도 나눌라치면 우리의 뇌는 더욱더 왕성하게 살아나 하루종일 콧노래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여러 가지 효과들은 결국 성인병 예방이나 치료에도 도움이 되어 건강한 나날을 누리게 될 것은 당연하다.

검색어에 운동의 방법이나 효과를 넣고 누르기만 하면 걷기에 대한 이야기는 줄줄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이것은 시작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그 결과가 전적으로 달려있다. 오늘 아침의 가을을 놓친다면 다시는 그 아침을 찾을 수 없을 것이며 오늘의 가을 들판을 놓친다면 평생 다시는 그날의 가을을 되찾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앞치마를 벗고 운동화를 신고 현관을 나서는 것만으로도, 텔레비전의 전원 스위치를 끄고 커튼을 열고 함께 걸을 친구와 만날 약속을 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하루를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

우리에게 사계절이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지만 그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는 잊기 일쑤다. 이제 그 사계절 중의 여왕이라 불리는 가을이 시작되었다, 지난가을, 내 기억에 남은 몇 가지 중 하나는 어둑해지는 보경사 경내로 울려 퍼지던 타종 소리와 그 소리를 들으며 같이 걸었던 사람의 발소리, 유난히도 가까이 내려왔던 가을 산의 실루엣, 떨어졌다 가까워질 때마다 간간이 부딪치던 옷깃의 바스락거림, 그런 것들이다. 내연산을 숨 가쁘게 한 바퀴 돌아 내려온 뒤였으므로 그 뒤에 오는 평온이 더더욱 고즈넉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다시 온 가을, 내년엔 올가을을 어떻게 추억할 수 있을지 모를 일이나 나는 일단은 어디로든 걷기로부터 시작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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