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혁명 직전 러시아를 쥐고 흔들었던 요승 라스푸틴은 생김새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까만 장발에다 구레나룻을 기르고 상대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그의 이상야릇한 눈빛은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그 시퍼런 눈빛을 바라보고 있으면 누구나 최면에 걸릴 것만 같았다. 시베리아 농촌 마을에서 태어난 라스푸틴이 성인이 돼 수도 페테르부르크에 나타나자 귀족들은 다투어 그들 모임에 초청했다.

그를 본 귀부인들은 그의 카리스마적 외모와 언변에 푹 빠져들었다. 당시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황후는 독일 출신인 알렉산드라였다. 이들 부부 사이에 태어난 황태자 알렉세이는 한 번 피가 나면 멎지 않는 불치의 혈우병을 앓고 있었다. 라스푸틴이 불치의 병도 치유했다는 소문을 들은 알렉산드라 황후는 라스푸틴을 궁중으로 불러 들였다. 라스푸틴의 구완으로 황태자의 병이 치유되자 라스푸틴은 황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황후의 신임을 등에 업은 라스푸틴은 궁정을 떡 주무르듯 하면서 국정을 좌지우지했다.

라스푸틴은 황후에게 “이제 황태자와 러시아 황실은 저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인연이 됐다”면서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라스푸틴은 궁정 밖으로 나오면 술과 성적 쾌락에 파묻혀 수많은 여인들을 농락했다. 그러나 라스푸틴의 전횡과 악행은 자신이 잘 가던 술집에서 꼬투리가 잡혔다. 술이 거나하게 된 라스푸틴은 실언 폭탄을 터트렸다. “러시아 황후 알렉산드라는 내가 원하는 대로 다룰 수 있다” 그 자리에 끼어 있던 신문기자에 의해 실언 사실이 알려지자 러시아는 왈칵 뒤집어졌다. 사람들은 ‘추악한 요승’이라고 질타했다.

시내 곳곳에 라스푸틴과 황후의 관계를 비꼬는 포스터와 대자보가 붙었다. 이 소문을 들은 니콜라이 황제는 오히려 소문이 ‘가짜뉴스’라며 소문을 낸 자들을 엄벌했다. 라스푸틴의 국정 농단으로 나라가 망할 지경이 되자 권력 주변에서 라스푸틴을 제거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라스푸틴은 러시아 왕족 유스포프 일당에 의해 암살되고 말았다.

권력형 부정 비리 의혹으로 온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든 ‘조국 사태’는 ‘라스푸틴의 러시아’를 떠올리게 한다. ‘조로남불’의 끝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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