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오촉 전구 같은, 눈 내린다 산지 절집
대웅전 추녀의 끝 금탁도 흐물흐물
길 잃은 바람을 불러 목울대를 세운다
골짜기로 흩어진 천 개의 바람소리
꾀죄죄한 불상들 몸뚱이 피가 돌게
적막 깬 소리 사이를 흰 새가 날고 있다

 

 

 

<감상> 촉촉한 눈이 내리면 추녀 끝 금탁(金鐸) 속의 혀도 흐물흐물해 집니다. 바람을 불러 목울대를 세운 금탁은 말문이 트여 천불천탑(千佛天塔)의 소망을 골짜기로 보냅니다. 천 개의 바람은 불경을 읽어내고 여기에 담긴 마음의 소리를 골짜기로 퍼뜨리고 있습니다. 꾀죄죄하고 볼품없는 불상들도, 목 없이 앉아있는 불상들도 피가 돌고, 염원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고개를 그쪽으로 향합니다. 적막과 소리 사이에서 그 경계를 지우며 흰 새가 날고 있습니다. 상록(常綠)과 초록 사이에서 흰 나비가 나는 것처럼 눈과 바람과 금탁 소리는 경계 없이 흘러갑니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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