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요즈음 법무부 장관 후보자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끌시끌합니다. 급기야는 진영 싸움으로 비화되는 양상입니다. 일단 진영 논리, 정파적 시각이 개입하면 평등, 공정, 정의 등과 같은 이성적 개념은 뒤로 밀리고 선악 다툼, 분노와 경쟁심 같은 것들만 앞으로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하루빨리 해결점을 찾아서 국내외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한 나라 상황에 다 같이 힘을 모아 대처해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처럼 국민적 관심을 모두 빨아들이는 블랙홀 쟁점이 등장하면 가장 손해를 보는 곳이 문화계입니다. 문화는 삶에 대한 다양한 관심과 자기실현의 성찰적 태도를 먹고 삽니다. 그런데 그런 ‘인간적인’ 감정과 사유를 다 빨아 당기는 블랙홀이 나타나면 영혼을 살찌울 문화 활동이 잠입할 삶의 여유 공간이 아예 사라져버립니다. 책도 안 팔리고 공연장도 텅텅 비게 됩니다. 여러 가지로 안타까운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반문화적 정쟁의 한 가운데서 갑자기 문화 용어가 등장해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비극(tragedy)’과 ‘스릴러(thriller)’가 바로 그것입니다. 한 유명한 정치가이자 작가인 어떤 분이 현 상황을 빗대어 그 말을 사용했습니다. 그가 말한 ‘비극’은 그리스 비극을 뜻합니다. 그의 “그렇게 비극이 완성되는 것이죠.”라는 말을 이해하려면 약간의 사전 지식이 필요합니다. 희랍비극에서 주로 다루는 영웅의 몰락에는 자기모순과 사소한 인간적 결함이 결정적으로 작용하고, 못나고 비루한 인간들의 시기와 질투가 크게 일조한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상황이 딱 그렇지 아니하냐는 주장입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이 ‘스릴러’입니다. “(검찰이 개입해서) 상황을 저질 스릴러로 몰고 간다.”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 말을 이해하는 데에도 약간의 사전 지식이 필요합니다. 미스터리, 서스펜스와 비교하면서 설명하겠습니다. 보통 얽히고설킨 사건의 내막을 파헤쳐나가는 이야기를 미스터리물(物)이라고 부릅니다. 그런 이야기 중에서 특히 ‘공포’나 ‘서프라이즈(놀라움)’가 전경화 되는 것을 스릴러라 부릅니다. 그와는 달리 주인공이 자신의 누명을 벗거나 범죄의 표적에서 벗어나기 위해 악전고투하는 과정이 전경화 되면 서스펜스입니다. 서스펜스의 핵심은 독자나 관객이 느끼는 ‘긴장감’입니다. 이 방면의 대가인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등장인물들이 탁자에 앉아 일상적인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폭탄이 꽝하고 터진다면 폭탄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던 관객들은 놀란다. 이것은 서프라이즈다. 그러나 등장인물들이 앉기 전에 누군가가 폭탄을 몰래 설치하는 것을 관객에게 보여준다면, 등장인물들이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내내 관객은 긴장한다. ‘이제 곧 폭탄이 터질 텐데, 저렇게 한가한 이야기를 하다니’, 그렇게 관객이 느끼는 조바심(긴장감)이 서스펜스다.”

서스펜스는 결국 작가와 독자의 공모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말로도 들립니다. 종내에는 승리할 것이지만 그 과정에 있어서는 중인환시리(衆人環視裡)에 온갖 고초를 다 겪어내야 한다는 것이지요. 한 프랑스 학자는 역대 추리소설의 구조를 분석하면서 ①탐정이 범인을 찾는 일이 중심이 되면 탐정소설(과거로 돌아가 범죄의 원인을 찾는 것이 핵심), ②탐정이나 수사관이 목숨의 위협을 받으며 범인과 싸우는 일이 중심이 되면 스릴러(강적에 맞서 싸우는 현재의 긴박감이 핵심), ③누명을 쓴 주인공이 진짜 범인을 잡고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는 서스펜스(목숨을 위협받는 긴박감과 범죄의 진실을 밝혀내는 과정이 동시에 핵심)로 나누어 설명한 바가 있습니다. 미스터리이면서 누구에게는 스릴러가 되고, 또 누구에게는 서스펜스가 되는 이 상황이 종국에는 어떻게 결판이 날지(가까운 장래이든 먼 훗날이든) 그 귀추가 사뭇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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