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이상식 포항지역위원회 위원·시인

 

일상의 삶에서 공원의 효용은 불문가지다. 도심 속의 녹지는 아마존 같은 존재에 다름 아니다. 거친 황야에 펼쳐진 오아시스처럼 지친 심중을 적신다. 과도한 밀집과 치솟은 바벨탑을 초래한 도시화. 그 사면초가를 벗어나고자 푸름을 갈망한다. 인간의 심연엔 그런 DNA가 새겨졌는지도 모른다.

뉴욕의 상징인 센트럴 파크는 세계 최대 도심 공원이다. 맨해튼 빌딩 숲으로 둘러싸인 금싸라기 대지에 조성된 휴식처. 오래전 일대를 거닐면서 미국이란 국가의 체취를 어렴풋이 느꼈다.

앞발을 치켜든 기마상이 있는 어딘가 출입로 방면엔 임대용 시티바이크가 놓였다. 동해 바다 같은 청색의 은륜들. 안내문을 보니 30분간 무료다. 일순간 욕망이 꿈틀댔으나 간단히 포기했다. 근처엔 은색의 지구본과 트럼프 호텔이 우뚝하고, 일본의 잃어버린 십 년을 견인한 역사적 현장인 플라자 호텔도 있다.

미국은 국립공원 종주국. 19세기 중엽 최초로 옐로스톤 지정과 더불어 시작됐다. 특히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공적은 탁월하다. 5개의 국립공원과 51개의 야생 조류 피난처를 확보하면서 국유림 관리에 적극 나섰다.

언젠가 여론 조사에서 뉴욕 시민의 90% 이상은 경찰서나 소방서 못지않게 공원이 필수라고 여겼고, 삼림 감시인은 청소년 선망 직업의 하나였다. 이를 본받아 다른 나라도 국립공원을 만들면서 한국도 1967년 지리산을 효시로 본격화됐다.

뽕밭이 푸른 바다가 되었다는 의미인 상전벽해. 세상이 몰라볼 정도로 바뀐 것을 뜻한다. 금년에 개통된 포항 철길숲 공원을 보면서 떠오른 화두가 격세지감과 천지개벽. 애물의 화려한 변신인 까닭이다.

나는 십수 년 전에 직장 인사 발령을 따라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당시 폐철도 연변에 위치한 신축 아파트를 얻었다. 기차가 다니지 않는 철로를 따라 걷기도 하고, 옆길에 주차를 하기도 했다. 공간의 미래를 가로막는 장벽 같은 흉물이라 여기며 하루속히 철거되길 바랐다. 재산 값어치 상승에 따른 이기심도 작동했으리라.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다르나 나름 최적의 거주지 요건이 있다. 공원과 도서관, 야산과 연못이 인접한 곳이다. 물론 도보로 가능한 반경에 자리해야 좋다. 손쉽게 걸음이 나가는 탓이다. 생각의 산파인 느림과 지적 추구의 욕망과 소중한 건강을 충족시키는 친환경. 공공재인 철길숲 덕분에 혜택을 만끽하는 편이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보행하면서 제자를 가르쳤다. 그들을 ‘소요학파’라 부르는 이유이다. 다함께 천천히 걸으며 대화를 나누고 공부를 하였다. 산책을 하면서 인생의 이치를 구하는 광경은 상상만으로도 여유롭다.

틈나면 철길숲을 걷는다. 6km 남짓한 거리. 도시의 남북을 잇는 소통로 역할이 크다. 이모저모 개선점도 눈에 띈다. 글로벌 구호는 이정표가 원천이다. 영어를 병기하면 어떨까. 오로지 한글로 표기된 간판은 불친절. 외국인 입장에서 그렇다. 영화 ‘그랜드 듀얼’의 재밌는 안내판. ‘여기는 실버벨입니다. 하지만 실버와 벨은 없습니다.’

자전거 무료 대여소는 어떨까. 여기서 공짜가 중요하다. 예컨대 두세 군데쯤 설치하면 될 것이다. 공원 북쪽에 사는 내가 모임으로 남쪽에 가면서 느낀 점이다. 대종상 수상식장 유해진의 소감이다. 힘들 때에 도와준 북한산 국립공원에 감사한다고. 이를 패러디해 나도 덧붙인다. “철길숲 공원이여,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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