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화철 한동대학교 교수
손화철 한동대학교 교수

내가 재직하는 학교는 몇 년 전부터 수시 100%로 학생을 뽑고 있다. 이전 정부들의 권고사항이기도 했지만, 우리 학교의 학생 선발에 더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정부에서는 수학능력고사 시험 점수에 초점을 맞추는 정시의 비중을 늘리라고 권고하여 다시 조정 중이다. 정부가 방침을 바꾼 것은 정시가 더 공평하다고 생각하는 여론 때문이다.

얼핏 보면 똑같은 오지선다 문제 풀기 경쟁으로 합격과 불합격을 가리는 방법이 더 ‘공평’하다. 하지만 그 공평은 수영선수를 달리기로 뽑는 것과 같은 이상한 공평이고, 그 폐해를 이번에 실컷 겪었다. 내 자신을 포함해 맨날 쭈그리고 앉아 문제집만 풀던 인간들이 나라를 말아먹고 있다. 최근 북새통의 주인공들인 교수(출신)와 검사(출신)와 기자(출신)가 그렇게 답답하고 야비하고 멍청한 것은 그놈의 ‘공평한’ 경쟁 때문이다. 지금 대다수는 술들을 많이 먹어 그 능력마저도 없어졌을 텐데, 어릴 적 어느 순간의 암기력으로 얻은 평생 갑질의 권한을 신나게도 흔든다. 그 알량한 실력마저 존경할 만한 스승이 아니라 후진 동네의 매질이나 비싼 동네의 학원 덕분에 얻었을 공산이 크다. 일률적 경쟁이 개천에서 용 나는 방식이라 하는 사람도 있으나 개천이 워낙 많던 시절의 이야기일 뿐이다. 최근 서울대 학생의 다수가 부잣집 자식이라는데, 정시로만 뽑았다면 그 정도가 더 심했을 것이다.

수시의 경우 서류를 받아도 각처 다양한 학교의 교내 석차와 비교과 활동을 완벽히 비교할 기준을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자기소개서와 면접까지 종합해서 평가하다 보면 우리 학교에 잘 적응할 만한 사람, 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좋은 선생이 기른 잠재력 있는 사람을 골라낼 약간의 여지가 생긴다. 그래서 수시와 정시로 나누어 입시를 치르던 시절에 우리 학교의 경우, 입학 직후에는 정시로 뽑은 학생의 성적이 월등히 좋지만 졸업할 때에는 수시로 뽑은 학생의 역량이 더 좋아지는 경우가 많았다. 많은 사람이 걱정하는 ‘금수저 전형’이 문제가 된 적도 없다. 사실 돈으로 스팩을 만들어 입시를 준비하는 건 대다수 대학들과 별 상관이 없다.

사실 더 심각한 문제는 입학 때 공평이 아니라 졸업 때의 공평이다. 나는 내 학생들이 서울 큰 대학의 학생보다 특별히 모자라다 생각한 적이 없다. 서울 여러 대학에서 얼마간 시간강사를 했으니 나름대로 근거도 있다. 설사 입학 당시 능력 차가 좀 있더라도 4년의 애정 어린 교육은 그 차이를 상당 부분 상쇄한다. 그러나 여전히 요지부동의 학벌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우리 졸업생들은 실력의 차이에 비해 과도한 불이익을 받는다. 슬픈 것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10대의 한 시절이 평생 갑질의 권리를 좌우하는 그 불공평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느닷없이 촛불을 든다는 어느 대학생들의 공평은, 자기 이익의 범위를 넘어선 불공평을 가르치지 않은 그 대학의 저열한 수준을 드러낼 뿐이다.

몇 주간의 광기가 이제 좀 가라앉을지 모르겠으나, 결말이 어찌 나든 우리 사회의 왜곡된 공평엔 당장 큰 변화가 생길 것 같지 않다. 하지만 기왕 난리굿판이 벌인 김에, 진정하고도 전체적인 공평에 대해 함께 좀 길게 이야기해 보면 좋겠다. 입시같이 좁은 영역에서 내가 받은 불공평한 대우에 대한 분노에 그치지 말고, 모든 영역에서 일상화된 불공평을 한 번 물어나 봤으면 좋겠다. 왜 학벌주의는 용인하고 입시제도의 공평만 요구하는지, 왜 높은 임대료에는 눈감고 최저임금에는 눈을 부릅뜨는지, 왜 재벌은 선처가 필요하고 노동자는 엄벌이 필요한지, 왜 장관후보자에겐 그렇게 가혹하고 국회의원에겐 그렇게 관대한지, 왜 학자는 표절로 망하는데 기자는 가짜뉴스로 승승장구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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