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동학 혜명학술원 원장
류동학 혜명학술원 원장

흉노족이 지배한 실크로드지 역은 장건이 개척한 이후 곽거병, 위청, 반초 등의 활약으로 한나라의 영역으로 들어갔다. 이후 삼국시대(220~280)를 지나 서진시대(265~316)를 마감한 인물은 흉노의 맹주 유연(劉淵)이다. 그는 팔왕의 난으로 혼란해진 서진(西晉·건국자 사마염)을 벗어나 산서성에서 자립하여 304년 한왕이라 칭했다. 이후 북위(北魏, 386~534)의 세조 태무제가 화북을 통일한 439년까지를 북위 최호가 지은『16국 춘추(十六國春秋)』에서 ‘5호 16국 시대’라고 부른다. 그러나 5호 이외에 한족과 파저족이 세운 나라도 포함하면, 그 수도 23국이나 된다.

16국은 전량·후량·서량·남량·북량의 5량(?), 전연·후연·남연·북연의 4연(燕), 전진·후진·서진의 3진(秦), 전조·후조의 2조(趙)와 하(夏), 성한((成漢, 304년~347년) 등이다. 시기적으로 5호16국을 분류하면 초반기는 전조와 후조의 대립이었다. 흉노족인 한의 유총이 서진(西晉)을 멸망시킨 다음에 유요가 전조(304~329)로 고쳤다. 이후 유총의 부장인 석륵이 하북성의 형태에 후조(319~351)를 세워 47년(304~351) 동안 대립하다가 후조가 전조의 유요를 멸망시켰다.

이후 모용황이 하북성 계(베이징)와 업성(한단)에 세운 전연(337~370)과 섬서성 장안(서안)에 세운 전진(351~394)이 20년(351~370)간 대립하다가 전진의 부견이 전연을 멸한다. 이후 전진의 부견(符堅)이 왕맹이라는 명재상을 얻어 376년 전량과 대(代, 315년~ 376년)를 멸망시켜 화북을 통일한다. 이 시기가 전진(前秦) 전성 시기로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간쑤성에 기반한 전량과 쓰촨성을 기반한 성한(成漢)이 있다.

북중국을 통일한 부견이 383년 동진과의 비수대전에서 패하고 강족인 요장에게 죽고 전진이 와해되자 북중국은 다시 힘의 진공상태로 빠진다. 이때 일어난 정권이 모두 12개로 관동(하북성, 산서성, 산동성)지역은 후연(384~409·선비족 모용수), 남연(398~410·선비족의 모용덕), 북연(409~436·한족 풍발), 서연(384~394·선비족 모용홍)등이다. 관중(섬서성, 영하자치구)지역은 후진(384~417·강족 요장), 서진(西秦, 385~431·선비족 걸복국인), 하(407~431·흉노족 혁련발발), 하서의 후량(386~403·저족 여광), 남량(397~414·선비족 독발오고), 서량(400~421·한족이고), 북량(401~439·흉노족 저거몽손) 등과 대국을 재건한 탁발규가 세운 북위이다. 이러한 16국 시대를 마감한 나라는 북위의 태무제이다.

북방지역이 16국이 각축을 벌이는 가운데 양쯔강 유역의 남방은 사마예가 세운 한족의 동진(317~420)이 있었다. 16국 가운데 실크로드 지역인 간쑤성과 신장지역에서 활약한 나라는 전량·후량·남량·북량의 4량(?)이 대표적이다. 한족의 장궤가 세운 전량(301~376)은 간쑤성의 양주(우웨이시)에 기반하여 간쑤성과 신장자치구의 구자·선선 등 서역 여러 나라를 지배했다. 이후 전량은 전진의 부견이 보낸 요장에 의해 멸망한다. 요장은 나중에 후진(後秦, 384~417)을 세운다. 우웨이시(무위시)는 4개국의 수도였던 역사도시다.

후량(386~403)은 저족의 여광이 세운 나라로 후진의 요흥에 의해 멸망하였다. 이때 승려 구마라습이 요흥에 의해 장안에 와서 300여권의 불경을 한역한다. 남량은 유일하게 청해성의 악도에 도읍하며 건국하였다가 나중에 양주에 도읍하였다. 북량(401~439)은 흉노족의 단업과 저거몽손이 세운 16국의 마지막 국가로 421년에 서량을 멸망시키고 돈황 일대를 장악하였다. 멸망 후 저거무휘가 고창에서 자립하였다. 서량은 유일하게 둔황에서 세워진 나라이다. 미래의 실크로드는 한국의 경주와 유럽을 연결하는 희망의 루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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