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례허식 덜고 정성은 더하고…제사문화 변한다
허례허식 덜고 정성은 더하고…제사문화 변한다
  • 오종명 기자
  • 승인 2019년 09월 10일 21시 18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9월 11일 수요일
  •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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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이씨 임청각 종가, 광복절에 4대조 한번에 합사
경북 종가 169곳 중 31곳 2대조까지만 제사 '간소화'
안동 임청각

종가에서 아파트까지 제사의 풍경도 달라지고 있다. 제사 시간이나 제사를 지내는 횟수, 그리고 소가족화 등으로 제사 음식의 숫자도 점차 감소하는 추세다. 때로는 가족 간의 화합을 오히려 해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제사를 그저 허례허식이 아니라 공동체의 가치를 담고 가족 간 화합을 이루는 문화로 발전시키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제사 음식이나 제사상 차림도 시대 흐름에 따라 변하고 있다. 아파트 제사상 차림, 혼자서도 얼마든지 돌아가신 분을 기릴 수 있는 1인 제사상, 그리고 정해진 공간이 아닌 여행 중에도 손쉽게 제사상을 차릴 수 있는 이동 제사상 차림도 등장한다.

최근 경북지역 양반가에서도 전통 예법을 개혁하는 종가들이 늘고 있다. 현실적인 어려움과 종가의 유지·발전 등의 이유에서다.

10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고성 이씨 임청각(보물 182호) 종가는 8월 15일 부모님부터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까지 4대의 제사를 한꺼번에 지낸다. 1년 내내 제사가 끊이지 않던 이 집안은 1994년부터 ‘제사가 집안에 부담이 돼 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광복절에 4대조까지 모든 제사를 모아 지내기로 뜻을 모았다.

매년 8월 15일 임청각 4대조를 모시는 제사상 차림.

석주 이상룡 선생(1858∼1932)의 고손자인 이창수(54) 종손은 “차례상은 작은 상 4개에다 과일 4개랑 포, 떡국까지 합해 10개가 채 안 되도록 간소하게 마련한다”고 했다. 제사를 마치면 가족들이 둘러앉아 비빔밥을 먹을 정도로 식사도 간소화했다.

이렇게 바뀐 이유는 예부터 “제사 때문에 식구들을 힘들게 하지 말라”는 원칙이 이 집안에 전해 내려오기 때문이다. 실제로 1744년(영조20) 작성된 제사 매뉴얼인 ‘고성 이씨 가제정식(家祭定式)’에는‘제사상은 간소하게 차릴 것’,‘윤회 봉사(형제간에 돌아가며 제사를 지내는 것)를 할 것’, ‘적서(嫡庶)의 차별 없이 모두 참여시킬 것’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현재 임청각 사당에는 신주(죽은 사람의 위패)나 감실(신주를 모시는 곳) 등 일반적인 제례 도구 하나 없이 텅 비어 있다. 이 씨는 “고조할아버지(석주)가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떠나며 고향 땅에 신주를 묻었다”며 “지금은 신주 없이 사진만으로 조상을 모신다”고 말했다.

임청각은 아들이 없는 경우 외손이 제사를 지낸 전통도 있다. 이 씨의 20대조 6형제 중 다섯째인 ‘이고’라는 분은 자손이 딸 하나밖에 없었는데, 생을 마치고 사위인 서 씨 집안에 재산을 물려줬고 이후 외손자가 제사를 지냈다. 이 씨는 “지금도 서 씨 가문에서 외손봉사로 ‘이고’의 제사를 지낸다”며 “외가든 서자든 누가 제사를 지내든 각 집안의 예법인 ‘가가예문’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퇴계선생 불천위

영남의 큰집인 퇴계 종가는 지난 2014년 매년 자정 전후로 열리던 퇴계 불천위 제사를 오후 6시로 당겨 지내기로 결정했다. 퇴계 16세손인 이근필(87) 종손은 “죽으면 납골당에 가겠다”고 했으며, 17세손인 이치억(43) 차종손도 “제사가 간소화되지 않으면 종가의 미래는 없다”고 했다.

이처럼 차례 및 제사를 간소화하는 종가들이 늘고 있다. 한국국학진흥원이 경북지역의 불천위 제사 173개를 조사한 결과 전체의 절반인 87곳이 자시가 아닌 오전이나 저녁에 치러지고 있다. 불천위 내외의 제사를 따로 지내지 않고 ‘합사’해 한 번만 지내는 곳도 49곳이나 됐다.

고조까지 지내는 4대 봉사 전통도 변화가 일고 있다. 경북의 종가 169곳 가운데 10곳은 3대까지만, 31곳은 2대까지만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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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명 기자 ojm2171@kyongbuk.com

안동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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