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추석래불사추석, ‘화리’(和理)와 ‘합리’(合理)
[데스크 칼럼] 추석래불사추석, ‘화리’(和理)와 ‘합리’(合理)
  • 곽성일 편집부국장
  • 승인 2019년 09월 15일 15시 40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9월 16일 월요일
  •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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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성일 편집부국장

추석이 왔지만, 추석 같지 않다(秋夕來不似秋夕).

들녘엔 누렇게 익은 벼가 지난여름을 견뎌온 세월을 자랑하듯 황금 들판을 이룬다. 자랑스레 고개를 쳐든 벼들은 손에 손에 선물을 들고 귀향하는 자식들을 마치 내 일처럼 반긴다. 한곳에서 태어나 자란 자식들은 부모 품을 떠나 광야와 같은 도시 객지 생활의 성공담을 부모들에게 자랑스럽게 늘어놓는다. 형제들은 또다시 한곳에 모여 추억을 소환하며 보름달과 함께 밤새도록 정담이 익어간다. 부모들의 흐뭇한 눈길이 자식들을 향하며 주름진 얼굴에 한가득 미소가 피어오른다.

황금 들녘의 벼들도 초가와 함석집 봉창 너머로 새어 나오는 부모 자식의 정담에 귀를 기울인다. 하늘 가득 둥글게 떠 있는 보름달도 환한 미소를 보낸다. 돌담 너머엔 친구들이 자기가 왔음을 알리고 빨리 나오라고 재촉한다. 친구들의 부름을 받은 자녀들은 아쉬움을 잠깐 접어 둔 채 사립문 밖으로 달려나간다. 어릴 적 함께 했던 친구들은 언제봐도 반갑다. 저마다 객지생활의 무용담과 추억담에 밤은 깊어만 간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던 우리들의 추석 전날 밤 풍경이었다. 이처럼 추석은 정감이 있고 넉넉했다. 힘든 도시 생활로 지친 영혼을 고향 산천과 부모 형제와 친구들을 만나서 다시금 힘을 얻는 곳이었다. 그런 추석 풍경이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가족과 이웃, 민족 공동체 의식이 끈끈했던 예전에 비해 지금은 보수와 진보의 진영 논리, 부모와 자식과 세대 차이의 심각성을 확인시켜주는 경우가 많다. 올해 추석도 정치 얘기가 주류를 이뤘지만, 예전 같지 않았다. 자신이 지지하거나 학연과 지연 등의 정치인이 아닌 장관 임명을 두고 확연히 갈린 생각을 보이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야당 정치권의 반대 시위가 이어지고 검찰 수사도 명절 연휴에도 계속돼 추석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이 사안을 두고 진보와 보수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대치를 하고 있다, 서로 원수를 대하듯 해 국가의 미래를 걱정스럽게 하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는 어느 때보다도 위태롭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외부의 적에 공동대처하기보다는 생각이 다른 이웃을 적으로 규정하고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밖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주변국들은 국제정세를 외면한 채 내부에서 소모적 논쟁을 벌이고 있는 모습을 보며 한심해 하거나 자신들의 이익을 챙길 수 있어 쾌재를 부를 것이다. 이런 고질적인 논쟁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까? 4년에 걸쳐 ‘장자’를 전편 완역한 김정탁 전 성균관대 교수는 “우물 안 개구리는 공간에 구속돼 바다를 알지 못하고, 매미는 시간에 구속돼 겨울을 알지 못한다. 그런데 지식인은 자신이 아는 바에 구속돼 세계의 참모습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큰 시선’을 갖게 하는 대붕의 비상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장자의 첫 장에는 ‘대붕(大鵬)이 힘차게 날아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하늘이 땅에서 올려다볼 때처럼 푸를 뿐이다’고 기록돼 있다. 김 교수는 “만약 높이 날지 못하고 낮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개미 한 마리까지 보인다. 사사건건 분별한다, 이것이 ‘작은 앎’이다. ‘나는 선인데 너는 악이다’는 이분법적 논리도 그렇다. 작은 잘잘못을 따지다가 공동체 전체가 무너지고 만다. 그래서 장자는 ‘대붕처럼 높이 날아오르라’고 했다”고 강조했다. 장자에는 전체적인 조화와 균형을 유지한다는 화리(和理)라는 ‘큰 지혜’가 있다. 그 대척점에는 이치에 합당한 것을 가리키는 ‘합리’(合理)의 ‘작은 지혜’가 있다. 합리는 옳고 그름을 따진다, 이치에 합당한가를 따지면 자꾸 쪼개고 쪼개서 시시비비를 가른다. 그럴수록 우리 사회는 아군과 적군으로 점점 더 벌어진다. 장자가 말한 화리의 ‘큰 지혜’는 다르다. 우리 사회 전체의 조화와 균형을 더욱 중요시한다. ‘작은 정치’는 적과 동지를 나누며 차이를 극대화하고 ‘큰 정치’는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며 하나로 통합한다. 우리 사회는 이제는 잘잘못을 따지며 적과 동지를 가르는 ‘합리의 공동체’에서 ‘화리의 공동체’로 넘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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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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