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사방 빗장 지른 마을
아버지는 맘대로 일찍 떠나고
종일 비가 오는 강과 산만 남았다

기댈 곳 찾아 떠난 길
오십 넘어도 비만 내린다
우산 속에 숨은 슬픔 노리는
빗속의 매 한 마리

눈 내리기 전
넌 오지 않고
오늘도 한밤에 떠나라는 듯
아는 집은 모두 불이 꺼졌다

<감상> 고향에 가면 영원히 계실 것 같았던 어머니도, 아버지도 어느새 떠나고 없다. 산에서 동네를 내려다보면 어느 집이든 부모님이 떠나지 않은 이는 없다. 그때 그 시절 시끌벅적했던 고향 사람들은 다들 언제 어디로 떠나간 것일까. 기댈 곳이 없는 자식들은 고향을 잘 찾지 않으므로 추석 명절에도 들썩이지 않는다. 아침 안개와 비오는 강과 산만이 그대로 남아 있기에 고요와 슬픔에 젖어든다. 떠나간 이들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고, 아는 집은 대부분 떠나가서 불이 꺼져 있는 풍경은 참 을씨년스럽다. 또 다른 슬픔이 찾아올까봐 시인은 한밤에 떠나야만 하는가.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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