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워해서는 안 되는 시간들을
어디쯤 스르륵 놓아주어야 하나
하염없이 길고 굽어진 길

한 겹의 생,
언제 이렇게 속도가 붙었을까

그러나 이 겨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쩌다 느닷없는 밤안개 너를 데리고
떠나는 일

원주를 지나 치악 언저리를 돌아
판운리, 섶다리에 다다르는 일
그쯤이면 이 몹쓸 짐승 같은 허기
서강 긴 강물에 풀어놓을 수 있지 않을까

누구에게든
차마 버리지 못하는 계절이 있다

<감상> 누구든 그리움이 가득한 자신만의 계절이 있지요. 어떤 이는 봄일 테고, 어떤 이는 겨울일 테죠. 그리움은 허기진 몹쓸 짐승 같아서 잠시도 떠나지 않네요. 잠시 독한 그리움을 부려놓을 장소를 물색해 보고 싶을 때가 있죠. 그러면 멀리 한적한 곳으로 굽이굽이 떠날 수밖에 없어요. 판운리 섶다리나 회룡포 섶다리 아래로 흐르는 긴 강물에 풀어놓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움이 섶다리를 건너 다시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리 쉽지만은 않죠. 계절이 다시 찾아오듯 그리움은 몰려오고 차마 떨치지 못하니. <시인 손창기>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