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설] 왕망과 조국
[삼촌설] 왕망과 조국
  • 설정수 언론인
  • 승인 2019년 09월 19일 17시 55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9월 20일 금요일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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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12대 황제 원제는 황실의 내분을 막기 위해 황후한테서는 자식을 낳지 않았다. 후사 문제로 치열한 궁중 암투끝에 자신의 생모가 독살됐기 때문이었다. 외척의 국정농단을 보고 자란 원제는 외척이라면 치를 떨었다. 그래서 원제는 후덕하기로 소문난 왕씨 여인을 황후로 맞이했다. 병약했던 원제가 재위 17년 만에 세상을 뜨자 얌전하기만 했던 황후 왕씨가 정치적 야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오라비 왕봉을 군권을 쥔 대사마로 임명, 정치에 개입했다.

원제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선제는 절세미인 조비연과 조합덕 자매에 빠져 정사는 뒷전이었다. 국정을 좌지우지하던 왕씨 집안에 승천을 꿈꾸는 한 마리 용이 있었다. 황후의 조카 왕망이었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뛰어난 자질을 보이고 민첩하며 박식한 왕망은 고모인 황후로부터 총애를 독차지 했다. 벼슬길에 오른 왕망은 승승장구 승진을 거듭했지만 경거망동하거나 위세를 부리지 않고 겸손한 자세로 인망을 쌓았다.

법을 적용하고 시행하면서 공정함을 과시하고 재난을 당한 백성들에겐 자신의 사재를 털어 구제해 주었다. 공정함과 선행으로 왕망에 대한 백성들의 인기는 급상승했다. 왕망의 명성은 유명무실한 천자를 압도, 그 위세는 나라 전체를 뒤덮었다. 한 왕실을 평안케 한 공신이란 칭호인 ‘안한공(安漢公)’의 작위를 받았다.

그러나 욱일승천하던 왕망의 비상도 여기까지였다. 어린 황제 평제를 독살, 왕권을 찬탈하고 스스로 황제가 돼 ‘신(新)’이라는 나라를 세움으로써 왕망의 그간 겸손과 공정, 선행이 위선이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던 것이다. 유씨 왕조를 무너뜨리고 왕씨의 천하를 만들겠다는 야심이 그를 희대의 위선자로 만들었던 것이다.

“군주가 총신을 지나치게 가까이 하면 그는 반드시 군주의 몸을 위태롭게 한다. 좌우의 대신이 지나치게 존귀해지면 그의 세력은 반드시 군주의 지위를 바꿔 스스로 군위(君位)를 탈취하고자 한다” 한비자의 경고다. 왕망은 결국 머리가 잘리는 처참한 종말을 맞았다. ‘단군 이래 최고 위선자’로 비판받는 ‘조국의 위선’은 왕망을 뺨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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