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화철 한동대 교수
손화철 한동대 교수

정시는 생각만큼 공평하지 않다. 모두 똑같은 시험을 쳐서 비교하니 수시보다 공평한 듯 보이지만, 입시 제도의 변화와 현황을 외면한 오해다. 시험 점수로만 합격을 결정짓는 제도는 게으른 공평의 추구이고, 그로 인한 손해는 이 사회의 을들이 지게 된다.

학생부종합전형을 비롯한 수시전형이 정시보다 금수저들에게 더 유리하다는 생각은 근거가 빈약하다. 자기소개서나 학생부 때문에 과열경쟁이 생겨났지만, 이번 조국 사태로 문제가 된 과거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지난 10여 년 동안 개선을 거듭하여 이제는 기재 항목이 극히 제한되어 있다. 몰아주기 같은 부작용이 있다 하나 막을 수 있고, 특목고나 돈 많은 지역 학교들처럼 활동이 더 화려한 곳에서는 내신 성적에서 불이익이 있다. 또 강남 집값이 전국 집값이 아니듯이, 상위 몇 대학의 입시에서 일어나는 부작용은 대부분의 대학들과 별 상관이 없다.

오히려 선생님과 학생이 함께 수행한 창의적 활동이나 자원봉사가 높은 평가를 받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교육 환경이 열악한 지역의 학생도 입시에서 유익을 볼 수 있다. 시험 점수처럼 기계적 비교가 불가능한 것은 맞다. 그러나 진보와 보수 정권을 모두 거치며 평가의 공정성을 최대한 담보하기 위해 많은 개선을 해 온 제도이다. 그 성과를 무시하고 무조건 없애는 것은 합리적이지도 공정하지도 한다.

정시는 대학수학능력고사를 기준으로 하는데, 극도로 긴장된 상태에서 한 문제 더 맞히기 경쟁을 하는 셈이다. 이게 공정한가? 문제풀이 실력과 방광조절 능력 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 알 수 없는 이런 시험제도 때문에 과거에 “운이 좋은 것도 실력”이라는 말이 횡횡했고, 그 시절에 태어나 자신의 운이 실력이라 착각하는 이들이 아직도 많다. 그러나 공연히 정시를 확대하면 문제풀이 경쟁이 심화할 것이고, 거기서 ‘공평’을 기하려 하면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문제를 어렵게 낼 것이다. 문제풀이 실력은 문제를 분석하고 반복해서 풀면 좋아지게 마련이므로, 결국 중고등학교는 문제풀이를 무한 반복하게 될 것이다. 이뿐 아니다. 시험 결과로만 승부하게 되면 사교육 업체들을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는 갑질을 하게 되고, 대학입시가 끝나면 유명 재수 학원 입시를 치르던 과거가 되풀이될 것이다.

최근 언론은 수시 입시의 부작용을 소수 사례를 중심으로 짜깁기하여 부각하면서, 수시 입시를 둘러싼 일선 교육현장의 노력을 폄훼하고 있다. 스카이캐슬식의 사교육이 효과적인지 검증된 바도 없고, 그것이 문제라면 스카이캐슬만 부수면 될 일이다. 물론 지금도 사교육 시장은 돈을 번다. 하지만 문제풀이처럼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는 상태에서 부모의 불안감과 상대적 박탈감을 조장하고 있다. 그러나 스카이캐슬 ‘선생님’의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하는 속삭임은 현재의 고액 사교육 시장이 돈만 쓰고 되는 일이 없는 사이비 종교일 뿐임을 방증한다.

예측 가능한 틀에 따라 준비한 학생이 아니라, 생각하는 힘과 배움의 즐거움을 경험한 학생을 뽑는 입시가 좋은 입시다. 문제풀이로 준비할 것이 명확해지면 부유한 학생들만 유리해진다. 깜깜이 입시라는 불만을 손쉽게 해소하려 하기보다, 교사가 충실하게 가르치고 학생이 즐겁게 배우는 교실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대학에서 실제로 배운 것이 대학 졸업장보다 중요한 세상이 좋은 세상이다. 입시제도에 목매게 하는 학벌주의는 중고등학교의 교육뿐 아니라 대학교육과 사회 전체의 경쟁력까지 망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남이 낸 문제를 풀라는 것은 정말이지 나락으로 가는 길이다.

입시의 공정성에 대한 민감함은 입학이 운명을 좌우하는 듯한 현실에 대한 실망과 비관의 표시다. 정시를 확대하는 게으른 공평으로 문제를 덮으려 하지 말고, 수시를 보완하고 학벌주의를 타파하려는 부지런하고 적극적인 공평을 추구해야 한다. 입시와 대학 졸업장이 앞길을 막지 않는 세상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어야 젊은이들을 설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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