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꾸는 것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 준비된 사람만이 기회 잡을 수 있어

박진현 유압시스템 정비분야 기술명장

‘꿈은 품기만 한다고 이뤄지는 게 아니라 끝없는 노력과 도전이라는 영양분을 줘야만 이뤄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꿈을 이룰 준비만 한다면 반드시 그 기회가 온다고 확신합니다.’

대한민국 명장!

숙련기술장려법 제11조 규정에 따라 산업현장에서 최고 수준의 숙련기술을 보유한 기술자로서 숙련기술 발전 및 숙련기술자의 지위 향상에 크게 공헌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기술(기능)인 최고의 훈장이다.

최소 15년 이상 같은 직종에서 일하면서 숙련된 기술도 가져야 하지만 해당 직종 발전을 위한 노력과 산업발전에 기여 해야만 선정자격이 주어질 만큼 대한민국 최고의 기술인이어야만 후보가 될 수 있다.

박진현(포스코 설비기술부)!

그는 대한민국 유압시스템 정비분야 기술명장이다.

초등학교 교사를 꿈꾸던 그는 중학교 당시 갑자기 기울어진 가세에 힘을 보태기 위해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고, 80년대 대한민국 산업의 꽃이었던 전자업계를 떠나 산업의 동맥 철강산업에 투신했다.

그리고 30여 년 그는 국내 최고의 유압분야 기술인이면서 어릴 적 꿈이었던 교사의 꿈도 이뤄냈다.

△부산 사나이, 전자산업계를 떠나 철강산업과 인연을 맺다

1960년 부산에서 태어난 그의 어린 시절은 운수업을 하던 아버지 덕분에 무엇하나 부족함 없이 자라면서 교사로서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중학교 시절 갑작스레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면서 그의 꿈도 사그라졌다.

그는 빨리 취업해 기울어진 가세에 도움이 돼야겠다는 생각에 경남공고를 거쳐 국립 부산공업전문대(현 부경대) 기계과로 진학, 기술인의 길로 접어 들었다.

그리고 군 복무 중이었던 1985년 당시 삼성·현대·LG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각광받던 대우전자에 합격, 구미공장 품질기술부 신뢰성 실험실에 배치됐다.

이 일은 작은 하나라도 결코 쉽게 생각하지 않는 그의 성격에 딱 들어 맞았고, 현장에서 여러 성과도 올렸지만 그의 꿈은 기계분야 전문기능이었기에 품질조사보다는 기계가 있는 현장이 필요했다.

대우전자에서 근무를 거듭할 수록 그런 생각들이 깊어졌던 그는 결국 입사 2년 만에 안정적인 생활이 보장됐던 대우전자를 포기하고, 수많은 도전과제들이 기다리고 있던 포스코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포스코는 1973년 첫 출선 이래 매년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며 한국 산업의 심장으로 떠올랐지만 대부분의 기계장치들이 외국 기술에 의존해야 할 만큼 개척해 나가야 할 과제들이 첩첩이 쌓여 있는 곳이었다.

기계 분야 전문 기능인을 꿈꾸던 그에게 있어 포스코는 무한한 도전의 장소였다.

그러기에 그는 이 선택에 대해 “아마도 포스코는 저의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운명적인 인연, 그리고 서보유압시스템과의 만남

철강산업은 일반 산업과 다르다.

올해 철강산업의 최대 이슈였던 용광로 블리더 개방문제에서 볼 수 있듯이 용광로는 한번 불을 지피고 나면 수명이 다할 때까지 불을 끄지 않고 365일 쉼 없이 쇳물을 생산해 내야 한다.

철강산업은 철광석을 이용해 쇳물을 만드는 제선공정→제선공정에서 생산된 쇳물을 용도에 맞게 제련하는 제강공정→제강공정에 만들어진 쇠를 반제품을 만드는 연주공정→연주공정에서 만들어진 제품을 다양한 형태의 강재로 만드는 압연공정 등 4가지 주요 공정이 맞물려 돌아간다.

이 4가지 공정 중 어느 하나라도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모든 공정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기에 철강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장치들이 최상의 상태로 가동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1987년 포스코로 자리를 옮긴 박진현 명장은 제강부로 배치됐고, 입사 2년 후인 1989년 포스코가 야심 차게 도전한 스테인리스 제강공장 건설요원으로 발탁돼 포스코의 새로운 도약에 힘을 보탰다.

그리고 당시 그의 공로를 인정받아 입사동기생중 가장 먼저 연주정비반장으로 발탁됐다.

연주공정은 앞서 말했듯이 제강공정에서 나온 쇳물을 직사각형의 반제품(슬래브)을 만드는 공정으로, 1개 당 수십t에 이르는 반제품을 끊임없이 쏟아내는 곳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쇳물을 이동시키는 그릇인 ‘래들(Ladle·대형주물용기)’이며, 이는 내화벽돌로 이뤄진 자체 무게에다 쇳물까지 보태면 무게가 수십t에서 수백t에 달해 유압장비 없이는 가동할 수가 없다.

그는 이 ‘래들’에서의 사고를 기점으로 유압시스템과의 운명적 만남이 이뤄졌다.

연주정비반장으로 활약하던 어느 날 밤 ‘래들’을 오르내리게 하는 장치인 ‘래들 터렛(Ladle turret)’이 고장나면서 공장이 정지됐고, 새벽 1시부터 밤을 꼬박 세운 끝에 ‘서보 유압시스템 이상’을 발견해 가까스로 정상화 시켰다.

하지만 밤새 공장가동이 정지되면서 막대한 손실이 발생하고 말았다.

이 사고 이후 유압시스템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됐고, 때마침 회사가 당시 외국기술에만 의존해 오던‘서보 유압시스템’을 전담할 설비기술부 유압그룹 구성원을 모집하자 고민할 여지도 없이 연주정비반장직을 내던지고 유압그룹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보 유압시스템은 제철산업의 자동화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기술로, 유압시스템과 전기제어시스템을 융합시켜 제어하고자 하는 물체의 힘·속도·방향 등 다양한 변수를 입력된 목표 값에 도달하도록 하는 첨단유압시스템의 결정체다.

제철산업 초창기 였던 당시만 해도 포스코는 자체 기술력이 빈약해 외국기술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고, 이 시스템에 고장이 발생하면 고장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제때 정비를 하기 어려워 고가의 서보밸브를 교체하는 데 급급하면서 생산원가 상승, 생산성 저하, 품질 불량 등의 문제로 이어졌다.

이 같은 위기에 봉착한 박진현 명장은 ‘서보 유압시스템을 알아야 한다’는 지상과제에 매달렸고, 근무시간은 물론 야간에 혼자 남아 닥치는 대로 분해하고 조립하고 잘라내면서 원리를 배웠다.

그리고 서보밸브의 성능과 이상 유무를 진단할 수 있는 장비가 도입됐지만 이를 운용할 사람이 없어 난관에 부딪치자 또 다시 진단장비와의 전쟁이 시작됐다.

퇴근도 포기한 채 장비와 씨름하며 운용방법을 익혔고, 그 속에서 서보유압시스템에 대한 현장노하우는 물론 학문적·이론적 지식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 1995년부터 무려 15년 동안 퇴근만 하면 포스텍 도서관을 찾아 끝없는 탐구에 들어갔다.

이 탐구과정에서 배관기능장·전기기능장·설비보전기사·전기기사·생산자동화산업기사 등 서보유압시스템과 관련된 자격증만 15개를 땄다.

그가 현재 갖고 있는 자격증만 기능장 4개를 포함해 모두 29개에 이르지만 지난 2014년 자신의 모교인 부경대에서 석사학위까지 취득했다.

또한 일본어로 된 전문서적을 읽기 위해 일본어 공부에 전력을 기울인 끝에 마침내 외국기술에만 의존해 오던 서보밸브 진단 및 수리기술을 국산화하는 것은 물론 국내 최초이자 최고의 기술로 승화시켰다.

특히 지난 2009년 국내 최초로 서보 밸브 상태를 진단할 수 있는 ‘POSCO 맞춤형 통합 진단시스템’을 개발, 국산화에 성공했다.

이 시스템이 가동되면서 압연제품 품질향상과 제강·연주제품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졌으며, 서보유압시스템 고장 시 최단시간내 진단 및 조치가 가능한 트러블 슈팅(Trouble Shooting)복구기술을 개발해 무려 55억 원이 넘는 원가절감까지 이뤄냈다.

그는 이런 연구와 도전으로 자신만의 노하우를 축적해 온 결과 지난 2015년 대한민국명장(기계정비)의 반열에 올랐으며, 2016년에는 후진 양성에 기여한 공로로 동탑산업훈장 수훈의 영예까지 안았다.

△어린 시절 꿈을 이루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 교사를 꿈을 삼았던 박진현 명장은 지금도 ‘다시 태어나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물으면 “초등학교 교사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초등학교 교사는 아니지만 대한민국 기술명장으로서 후배들을 가르치는 꿈을 이뤘다.

지난 1995년 서보유압시스템과 첫 만남 이후 무려 25년간 서보유압시스템에 모든 것을 바친 그는 자신이 터득해 온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해주기 위해 일찌감치 직원교육용 시스템 개발 및 30여 종의 메뉴얼을 집필해 공유하고 있다.

이런 노력은 유압설비관리·비례유압제어·자기연마공정 특성평가에 관한 연구·반응표면 분석법 최적화·서보유압제어·서보밸브의 히스테리시스 특성 연구 등 다양한 실무 책자 집필과 연구논문을 발표로 이어졌다.

또한 포스코 실무형 인재양성소인 인재창조원과 포스코 기술대학 교수 및 한국산업인력공단 산업현장교수로 활약하며 후배양성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리고 ‘준비된 사람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강조하는 그는“ 뭔가 준비를 하면 반드시 그 기회가 주어졌기에 저는 참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라며 “우리 후배들도 그냥 시간을 보내지 말고 미래를 향한 투자로 명품 인생을 만들어 가 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이종욱 기자
이종욱 기자 ljw714@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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