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차를 타고 나가보니 아낙네들은 얼어붙은 땅을
파고 무씨를 갈고 있었습니다. 그네들의 등에 업힌 아이들은
고개를 떨군 채 잠들어 있었습니다. 남정네들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논두렁에 불이 타고 흰 연기가 천지를 둘
렀습니다.

진흙길을 따라가다 당신을 만났습니다. 무릎까지 오는 장화
를 신고 당신은 아직 물이 마르지 않은 뻘밭에서 흙투성이 연
뿌리를 캐고 있었습니다.

혹시 당신이 찾은 것은 연뿌리보다 질기고 뻣센 당신의 상
처가 아니었습니까. 삽에 찍힌 연뿌리의 동체에서 굵다란 물관
구멍을 통해 사라진 것은 도로(從勞)뿐인 한 생애가 아니었습
니까. 목청을 다해 불러도 한사코 당신은 삽을 찍어 얼어붙은
연뿌리를 캐고 있었습니다.

 


<감상> 얼어붙은 땅을 파고 무씨를 심는 아낙네들의 모습에서 어머니를, 등에 업혀 잠든 아이에게서 화자는 자신을 떠올렸을 겁니다. 또한 남정네들은 농사일에 늘 뒷전이었습니다. 하여 당신의 삶은 연기처럼 뿌옇고, 헛되고 보람 없는 삶인 “도로(徒勞)뿐인 한 생애”를 보냈습니다. 도무지 나아지지 않고, 고달프고 한(恨) 많은 삶이 바로 당신(어머니)의 상처입니다. 연뿌리보다 질긴 삶을 살다간 당신을 목청을 다해 불러도 대답이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게 연민과 동정의 시선뿐이었을까요? 연뿌리의 물관 구멍처럼 내 마음이 숭숭 뚫려 있습니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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