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최라라)시인·포항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최영미(최라라)시인·포항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태풍이 다녀간 뒤 하늘은 유난히 맑아졌다. 이발소에 걸린 사진처럼 뭉게구름이 뭉실뭉실 걸려있고 그 위로 더 높아진 하늘은 눈이 부시도록 푸르다. 하늘을 볼 때마다 감탄하게 되는 날이 이 계절이다. 지난여름 그 뜨겁던 나날과 회색의 태풍은 언제 그랬냐는 듯 까마득해진다. 조물주가 인간에게 준 선물이다. 여름 다음의 가을이라는 계절.

조화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본다. 긴 것과 짧은 것을 조화라고 할 수 있고 굵은 것과 가는 것, 예쁜 것과 못생긴 것 등 이렇게 서로 다른 것들이 짝을 이루어 잘 어울리는 것을 대체로 조화롭다고 한다. 이것을 다른 말로는 균형이 맞다,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것들은 균형을 맞추기 위해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사시사철 그 검은 태풍의 하늘로만 일관한다면, 반대로 푸르른 하늘만 지속된다면 우리는 하늘이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가 잘 쓰지 않는 손목에 시계를 찬다. 그러니까 시계를 어느 손목에 하고 있느냐만 보아도 그 사람이 오른손잡이인지 왼손잡이인지 대충은 알 수가 있다. 그것도 균형 맞추기의 일부다. 오른손이 무엇인가를 만지거나 잡을 때 비어있는 왼손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시계가 거기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왼손이 전화기를 잡고 통화를 할 때 오른손으로 자기도 모르는 낙서를 하는 것도 균형의 일부라고 한다. 우뇌와 좌뇌의 움직임에 대한 균형 잡기이다.

이사를 하고 난 뒤 냉동실 문이 자주 열리는 일이 일어났다. 꼭 닫았다 싶은데도 퇴근해서 가보면 문이 열려 그 안의 것이 전부 녹아 낭패를 보는 일이 생겼다. 쓴 지가 제법 된 것이라 낡아서 그런 것이겠거니 하고 있다가 어느 날 우연히 그것이 균형이 맞지 않을 때 생길 수 있는 현상이라는 것을 알았다. 뒤쪽과 앞쪽의 균형을 잘 잡아야만 문이 제대로 닫힐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뒤쪽을 조금 낮추고 난 뒤 감쪽같이 문 열림 현상이 사라졌다. 균형에 대해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때 있었던 일이다. 간혹 오래된 식당에서 식탁 다리 밑에 끼운 두꺼운 종이를 발견할 때가 있다. 냉장고가 그렇듯 식탁도 네 개의 다리가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식탁으로서의 역할을 못 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균형은 필요하다. 성격이 급한 사람에게는 차분한 성격의 친구가 필요하고 소극적인 사람에게는 적극적인 성향의 친구가 필요하다. 그래야 각각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냉장고나 식탁의 다리와는 달리 사람은 의도적으로 스스로 이 균형을 깨거나 유지해 나갈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이 균형을 맞추기보다는 상대방이 맞춰주기를 바라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사람은 누군가 맞춰주어야만 균형을 잡을 수 있는 냉장고가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가. 균형을 맞추기 위해 내가 먼저 안녕하세요?, 할 수 있어서 내가 먼저 고마워, 미안해, 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마치 입이 없는 것처럼 손이 없는 것처럼 누군가가 먼저 말하기를, 손잡아 균형 맞춰주기를 기다린다면 냉장고나 비뚤어진 식탁과 무엇이 다를까.

가을 하늘은 그 무덥고도 암울했던 여름 하늘이 물려준 나름의 보상이다. 그 여름이 균형을 맞추려고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 하늘 아래, 균형을 맞추려고 우리는 오늘 누구에게 손을 내밀어 보았을까. 누구에게 먼저 좋은 아침이에요. 인사를 건네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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