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나면 초승달이 떠 있었네. 며칠이고 웅크렸다가
깨어나도 초승달은 공중에 박혀 먼 바다를 꿰매고 있었
네. 눈 감아도 하염없고 눈을 떠도 마음 둘 곳 없었네.
해무로 뒤덮인 물렁물렁한 고립이었네. 속초에서 하루를
보내고 또 몇 달을 기다렸네. 하루에도 십 년이 흘러갔
네. 밥을 짓고 물 말아 먹었네. 밥상 너머 당신이 걸려
있었네. 심장을 꿰매는 소리가 서걱서걱했네. 나를 부르
는 단호한 소리였네. 문을 여니 속초가 당신의 천 리였
네.





<감상> 바다 위에 뜬 초승달은 꼭 바늘 같기도 하다. 상처 난 바다를 꿰매고 있는 바늘 같기도 하다. 그리움을 떨쳐 버리려 스스로 몸을 가두는 고립무원(孤立無援)의 경지에 이르면 당신은 초승달로 떠오른다. 초승달이 나의 심장을 꿰매고 파도소리가 내 심장으로 파고든다. 자신을 안으로 가둘수록 십년이라는 세월이 하루같이 흐른다. 이제 바다 위에 뜬 초승달이 꼭 나를 부르는 당신처럼 보인다. 속초라는 그리움의 장소가 다가갈 수 없는 당신의 천 리이자 나의 천 리이다. 누구나 속초 바다와 같이 간절함이 묻어있는 추억의 장소는 하나쯤 가지고 있을 것이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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