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성우 국가디자인연구소 이사장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 동의보감에 나오는 말로 ‘소통이 되면 고통이 없고, 소통이 안 되면 고통이 온다’는 뜻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한 나라에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반드시 병리현상이 나타난다. 특히 한국처럼 대통령제를 택한 국가에서는 국가지도자의 소통능력이 더욱 중요하다. SNS를 통해 유권자들과 소소한 일상을 공유한다고 소통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란 올바른 정책으로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참신한 인사로 국민에게 감동을 줘야 하는 자리인 만큼 언제나 국민과 ‘인사‘와 ’정책‘으로 소통해야 한다.

정부 출범 때 문재인 대통령은 신임 수석비서관들과 손에 커피를 들고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는가 하면 출근길 시민들과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누는 모습 등을 통해 ‘탈권위’ ‘소통’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그러나 그 다짐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 듯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초부터 국회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공직 후보자들의 임명을 강행해 국회와 국정의 마비를 수시로 초래하면서 ‘불통인사(不通人事)’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동시에 소득주도성장을 내세워 밀어붙인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후유증으로 국민들이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데도 “최저임금 인상은 긍정 효과가 90%”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경제인식을 보여주면서 ‘불통정책(不通政策)’이라는 지적이 거센 이유도 여기에 있는 듯 하다.

박근혜 정부를 통해 지도자가 불통이면 국가와 국민이 얼마나 불행해지는지 직접 경험한바 있는 우리 국민들은 ‘소통하는 정부’를 약속했던 문재인 정부에 대해 그래서 더욱 분노하고 실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선의를 갖고 시작한 정책이라도 부작용이 속출하고 현실과의 괴리를 확인했으면 과감하게 「정책의 궤도를 수정하는 용기」를 보여 주는 것과 인사 역시 좋은 인재를 잘 뽑아서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은 국정 운영의 핵심인 만큼 인사도 국민이 반대하는 사람이라면 때로는 단호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대통령의 용기 역시 진정한 국민과의 소통」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치적 소통 롤모델로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을 꼽은 바 있다. 그래서인지 SNS를 통한 국민소통이나 탈권위, 서민적 행보는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데칼코마니(어떤 무늬를 종이에 찍어 다른 표면에 옮겨 붙이는 기법)와 같았다. 그러나 정작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서 배워야 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자신의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과도 직접 소통했다는 점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적대감을 표출해온 공화당 의원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점심을 함께하며 격의 없이 대화하고 수시로 전화 통화도 했다고 한다. 정책추진 과정에서 의회 설득이야말로 ‘소통’의 우선 과제임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 쉬운 정치적 용기를 낼 수 없을까?

세계적으로 유명한 리더십 전문가 마티 린스키(Marty Linsky)는 21세기를 이끌어갈 정치인이 성공하느냐의 여부는 시대 혹은 국민이 요구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에 맞춰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했다. 즉 대통령의 진정한 소통이란 변화하는 환경과 여론을 제대로 읽고 이를 적절히 수용하여 국가발전의 에너지로 활용하는 것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이 지속적으로 여론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 정부는 비민주적 속성을 지닌다는 지적을 인식해야 한다. 물론 여론이 늘 옳은 것은 아니다. 따라서 대통령은 대중만 보고 정치를 할 것이 아니라 의회에서도 특히 야권(野圈)을 국정의 파트너로 삼아 국정을 운영해 나가야 한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에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가의 지위는 항상 위험하다. 백성의 뜻만 추종하려고 하면 그들과 함께 망하게 되고, 백성의 뜻을 거스르면 그들의 손에 망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 민심으로 탄생한 정부 아니던가? 촛불혁명의 진정한 완성은 문재인 정부의 성공에 달려있다. 그러나 대결구도의 정치 속에서 국민들이 둘로 나뉘어서 과연 대한민국의 미래가 보장될 수 있을까? 더 큰 문제는 둘이 다시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참모진과 청와대 산책중인 문 대통령.연합
10대 총수들과 산책중인 문 대통령.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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