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구, 태풍 '미탁' 최고 500㎜ 넘는 물폭탄에 피해 속출
포항 장성동 한 주택단지, 역류한 쓰레기·오물 냄새 진동
영덕 강구시장, 1년 만에 또 침수…상인들 "답답하다" 한숨

태풍 미탁의 영향으로 많은 비가 내리면서 3일 오전 영덕군 영해면과 병곡면을 연결하는 송천교 중간 상판(오른쪽)이 내려앉앗다. 바로 옆 옛 송천교는 중간 부분이 떠내려 갔다. 이은성 기자 sky@kyongbuk.com

“이 동네 사람들은 이제 1층에서 못 살아요. 태풍만 오면 물이 차는데…”

하늘 문 열린 개천절(開天節)에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미탁’의 물 폭탄이 떨어진 경북·대구 곳곳에서 극심한 피해를 입은 지역이 속출했다.

밤사이 태풍이 300㎜가 넘는 비를 뿌리고 간 지난 3일 오전 포항시 북구 장성동 장성시장 한 주택단지에는 역류한 쓰레기, 오물 등 하수도 침전물 냄새가 진동하고, 골목마다 침수 피해를 입은 주민들이 꺼내놓은 TV, 옷장 등 흙탕물에 젖어 쓸모 없어진 가재도구로 가득했다.

저지대인 탓에 태풍만 오면 물이 넘치기 십상인 이곳 주택단지에 살고 있는 주민들 중 2층 집을 보유한 사람들은 1층을 아예 비워놓고 산다.

침수 피해를 입은 장성동 주민 김종환(60)씨는 “물난리가 잦은 이 동네에는 1층을 포기하고 2층에서 살 수 밖에 없는 기형적인 주택문화가 생겨버렸다”면서 “주민 대부분이 아래층을 창고 또는 빈집으로 두며, 단층 건물에 사는 사람들은 매번 침수 피해로 고생한다”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같은 날 북구 창포동에 위치한 두호종합시장에서도 정육점·청과물 가게·식당 등 약 100곳에 달하는 상점이 태풍 피해를 입은 가운데 상인들이 착잡한 심정으로 도로변에 모아둔 오염되거나 망가진 판매상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이곳 시장에서 25년째 정육점을 운영하고 있는 황흥선(57)씨는 “몇 개월 전 시장 인근에 배수관로 공사를 마쳤으나 자연재해에는 소용 없었다”며 “못쓰게 된 고기도 아깝지만 육절기, 진공포장기 등 물에 젖은 고가의 장비를 다시 장만해야 할 생각을 하니 눈 앞이 깜깜하다”고 말했다.

태풍 ‘미탁’영향으로 폭우가 쏟아진 3일 0시 46분께 포항시 북구 기북면 대곡리에 산사태로 주택 한 채가 매몰되고 흙과 돌이 무더기로 쏟아지면서 차를 덮쳤다. 이은성 기자 sky@kyongbuk.com

포항시 북구 흥해읍 들녘에는 이번에 쏟아진 물 폭탄으로 벼들이 쓰려지고, 산에서 내려온 물이 한강을 이루는 등 피해가 이어졌다.

이날 오전 자신의 논에서 벼를 세우려 안간힘을 쓰고 있던 조동춘(80·용천2리)씨는 “많은 비가 오면서 농수로가 물이 넘쳐 강으로 변해 논에 있던 벼들이 쓸려온 흙에 묻히거나 쓰러졌다”며 “빨리 벼를 세워야 그나마 조금이라도 건지는데 늙은 혼자 몸으로 엄두가 안 난다.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흥해에서는 지난해 태풍 콩레이 때 곡강천이 범람해 강변에 설치된 간이야구장·족구장 등 체육 시설이 유실됐는데 올해 또 다시 피해를 입었다.

포항시 남구 형산강변 산책로에도 쏟아지는 태풍이 뿌려대는 폭우와 강풍 때문에 강물이 넘치면서 형산강 장미원은 쑥대밭이 됐고, 남구 상도동 뱃머리 마을 꽃밭에 조성된 생태연못에도 흙탕물이 들이쳐 물에 잠기는 등의 피해가 발생했다.

같은 날 380㎜의 강수량을 기록한 영덕군에도 태풍이 지나간 흔적은 뚜렷했다.

지대가 낮은 영덕 강구시장에는 70∼120㎝까지 물이 들어찼다.

영덕군은 시장에 커다란 배수펌프를 설치해 물을 밖으로 빼냈지만 이미 침수된 이후라 피해를 막을 순 없었다.

대피령에 따라 고지대에 있는 건물 등에 대피했다가 비가 그친 새벽에 침수 현장을 두 눈으로 확인한 주민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상가와 집에는 가재도구들이 물에 둥둥 떠 있고 판매용 상품의 상당수는 못쓰게 됐다.

물에 잠긴 가전제품은 고철 덩어리가 됐고 보일러에서 나온 기름 냄새가 코를 찔렀다.

소방당국은 펌프를 동원해 지하나 건물 내부에 있는 물을 밖으로 빼냈고 소방차를 이용해 물로 진흙탕이 된 도로를 씻어내느라 분주했다.

한 옷가게 상인은 “지난해에도 ‘콩레이’로 인한 피해가 컸는데 올해에도 어김없이 태풍이 닥쳤다”며 “세탁이 불가능한 수준의 제품이 많아 손해가 극심하다. 어떻게 먹고 살지 답답하다”고 힘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각 상가나 가정에도 시간이 지나면서 물로 씻어내고 못쓰게 된 제품을 밖으로 빼내느라 바삐 움직였다.

또 다른 상인은 “해마다 피해를 입는 강구시장에서 누가 장사하고 싶은 마음이 들겠느냐”며 “다른 곳으로 옮기고 싶어도 들일 사람이 없어 고민”이라고 말했다.

울진군에 따르면 3일까지 북면에 최고 516mm의 비가 내렸고, 울진읍 일부 지역에서는 전기와 수도가 끊겼으며 11개 도로시설이 낙석 등으로 인해 일부 또는 전면 통제되는 등 혼란이 이어졌다.

이날 오전 9시께에는 울진읍의 한 주택 뒷산이 무너져 내리면서 강모(67)씨와 부인(62)이 흙더미에 매몰 돼 숨진 채 발견됐다.

평해읍과 매화면 일원에서는 소규모 교량이 유실돼 차량이 통제됐으며, 울진읍 바지게 시장 일원과 읍내 3리(월변 마을)에는 불어난 물로 인해 수백여 곳의 상가와 주택이 침수됐다.

하지만 침수 원인을 두고 피해 주민들은 “재해가 아닌 인재”라며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주민들은 이미 태풍이 많은 비를 뿌릴 것이라는 사전 예보가 있었음에도, 울진읍 배수펌프장은 2일 오후 8시가 돼서야 가동에 나서는 등 늑장대응으로 화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뿐만아니라 3일 새벽 1시께는 정전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울진읍 배수펌프장은 선로변경 작업을 위해 30여 분간 가동을 멈춘 사이 불어난 물을 처리 못 해 대량 침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배수펌프장의 가동 중지로 갑자기 침수된 도로는 출입통제가 늦어지면서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운전자들이 주행하다 엔진에 물이 들어가 멈추는 사고도 속출했다.

운전자 A 씨는 “정전으로 인해 주위가 어두워 조심스럽게 주행했지만 불어난 물의 깊이를 몰라 사고가 발생했다”면서 “통제가 안 된 도로는 지나갈 수 있다는 안일한 생각에 그만 문제가 생겼다”고 말했다.

한편 울진군은 군수 주재의 태풍 피해 복구 대책회의를 열고 공무원과 인력 등 1300여 명을 투입해 현장 응급 복구 작업에 나서고 있다.

또한 지난해 태풍으로 인해 취소됐던 울진 금강송 송이 축제는 불행히도 올해 또 태풍의 시샘으로 취소되는 불운을 안았다.

울릉도에도 폭우와 강풍으로 산사태와 낙석 등 태풍 피해가 속출했다.

울릉군의 일주도로 북면과 사동 가두봉과 구암마을까지 일주도로 6개소에 300㎥의 낙석과 토사 유입으로 일주도로가 통제에 들어가 주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폭우으로 인해 이달 말 준공을 앞둔 도동리 LH 임대아파트 사업장의 진입도로 비탈면 토사 400㎥이 무너지고 나리분지 일대 도로와 농지 일부가 침수되는 피해가 발생했다.

높은 파도로 인해 울릉군 태하항의 부두 일부가 전도되고 울릉도 전 해상에 강푸주의보가 발령된 가운데 울릉도와 육지를 잇는 여객선의 입출항이 통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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