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화철 한동대 교수
손화철 한동대 교수

지난 9월 26일에 있었던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총회의 명성교회 세습과 관련한 결정은 많은 기독교인에게 충격을 주었다. 전국에서 교인들의 대표로 모인 목사와 장로들은 지난 2017년부터 논란이 된 이 초대형 교회의 세습을 ‘수습’하는 결정을 내렸다. 수습안은 명성교회의 세습이 불법이라는 2019년 총회 재판국의 결론을 받아들이면서도, 명성교회의 세습은 전임목사 퇴임 5년이 지난 후에 용인하기로 했다. 또 이번 결정이 2013년 목회자 세습을 금지한 교단의 헌법을 어기는 것임을 스스로 인정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이 결정에 대해 헌법과 사회법에 호소하면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이는 물건을 훔치는 건 잘못이지만 5년 후에는 훔친 사람이 가져도 좋다는 주장이고, 훔치는 장면을 보아도 신고하지 말라는 강요다. 종교가 가지는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이 결정은 최소한의 상식에 맞지 않는 모순으로 가득 찬 제안이다. 어떻게 교회의 어른이며 지도자인 사람들이 그런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내렸단 말인가?

이런 결정이 내려진 이유는 세습 문제로 교단이 시끄럽고 사회적 비난도 받으니 이 상황을 빨리 마무리해서 “명성교회도 살리고 교단도 살리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는 한국 교회가 지난 30~40년간 보여준 놀랍고도 전형적인 정신세계를 축약한 것이기도 하다. 기독교의 교세가 조용히 내리막길을 걷는 동안, 한국 교회는 사회에 도덕적 표본을 제시하는 데 무능하고 자신들만의 성곽을 쌓는 데 유능했다. 가진 돈과 위세를 유지하느라 온갖 비리와 추문에 휩싸였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정당화 체계를 갖추고 종교적인 언어로 스스로를 방어했다. 외부의 비난을 받으면 반성하기보다 원망하고 내부의 비판이 있으면 자성하기보다 눙쳤다. 갑자기 총회장에 나타나 “없는 법을 만들어서라도 살려 달라”고 호소한 세습의 당사자 김삼환 목사의 말에 박수를 치던 교회 지도자들의 모습은 차마 너무 익숙해서 슬펐다.

기독교회는 일반인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상식을 초월하는 우월한 사랑과 희생과 정의, 즉 초(超)상식로 구별되어야 하는데, 오늘날 한국교회는 몰상식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다. 몰상식을 초상식으로 둔갑시키는 동안 사회가 기독교를 외면한 것은 당연하다. 특히 수많은 젊은이가 기독교를 떠나 교회가 빠른 속도로 노령화하고 있다. 총회에 참석한 평균 연령 62세의 목사와 장로들은 목회 세습을 허용함으로써 자신들이 여태 닦아오던 교회의 내리막길을 아예 절벽으로 만들었다.

어떻게 여기서 벗어날 것인가? 굳이 성경의 정신과 하나님의 정의, 교회가 보여야 할 초상식까지 구하지 않아도 명확한 해법이 있다. 건전한 상식과 합리적인 판단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상식은 말한다. 교회의 세습이 잘못이라면, 세습을 금지하는 법을 고칠 것이 아니라 세습을 포기하면 된다고. 김삼환 목사 부자가 세습을 그만 두면 명성교회와 교단이 비판을 받을 일도 없고, 온 교회가 다 같이 헌법을 어기고 무력화시키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 누구도 피해를 입지 않고, 그 어떤 종교적인 대의도 손상되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 기독교는 참 오랜만에 스스로의 실수를 바로잡은 것에 대해 사회로부터 칭찬을 듣게 될 것이다.

그동안의 과오를 바로잡을 절호의 기회를 놓친 실패의 주역들은, 자신들을 역사가 어떻게 기억할지에도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대형교회의 돈과 권세에 스스로 엎드린 지난 9월 26일의 결정은 한국교회가 일제의 박해를 못 이겨 신사참배에 굴복했던 것보다 더 부끄러운 대참사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그 역사에 내 고장 포항의 이름도 들어갈 일을 생각하니 아득하다. 이제 남은 희망은 기독교의 표지라 할 참회와 돌이킴을 통해 이 참사를 바로잡았다는 몇 문장이 그 역사에 더해질 실낱같은 가능성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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