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동학 혜명학술원 원장
류동학 혜명학술원 원장

전남 순천의 선암사(사적507호), 해남의 대흥사(사적 508호), 불보사찰이자 대웅전과 금강계단(국보290호)이 있는 양산 통도사, 국보인 대웅전(국보311호)과 극락전(국보15호)이 있는 안동 봉정사, 무량수전과 조사당등 국보 5곳을 보유한 영주 부석사, 국보 팔상전·쌍사자 석등·석련지로 유명한 보은 법주사, 백범 김구와 인연이 깊은 공주 마곡사 등 한국의 산사(山寺) 7곳이 2018년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2019년에는 소수서원(경북 영주), 도산서원(경북 안동), 병산서원(경북 안동), 옥산서원(경북 경주), 도동서원(대구 달성), 남계서원(경남 함양), 필암서원(전남 장성), 무성서원(전북 정읍), 돈암서원(충남 논산) 등 9곳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한국의 서원은 오늘날까지 사회적 관습 형태로 지속되는 한국의 성리학(신유학)과 관련된 문화적 전통의 증거”라며 “성리학이 한국에 맞게 변화하는 역사적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인정된다”고 평가했다.

유학의 본고장인 중국도 누리지 못한 한국 유학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이 한국 서원의 세계문화유산등재이다. 유학의 창시자 공자(孔子·B.C. 551-479)는 노(魯)나라 양공 22년 음력 8월27일 경술년 을유월 경자일 오늘날 중국의 산둥성 취푸(곡부)에서 태어났다. 공자의 조상인 공보가(孔父嘉)는 현재의 허난성 상추(상구)시 부근인 은의 미자가 세운 송(宋)나라 사람으로 대부를 역임했으나 후손이 화를 피해 노나라로 왔다. 이후 5대조 목금보-고조 기보-증조 방숙-조부 백하-부 숙량흘은 사후에 공자 덕분에 왕으로 추봉되는 영광을 누린다.

하급귀족 무사출신인 숙량흘은 본처 시씨(施氏)사이에서 딸만 아홉을 두었고 둘째 부인과의 사이에는 아들 맹피가 있었다. 안징재와 야합(野合)하여 공자를 낳았다. 나면서부터 머리 위가 오목하게 들어가서 구(丘)라고 이름 지었다. 19세에 병관씨의 달과 결혼하여 아들 리(鯉)를 얻었다. 공자는 인(仁)을 가장 강조했다. 공자는“기교 있는 말이나 좋은 낯을 꾸미는 자는 인이 적으니라(巧言令色 鮮矣仁).”라고 말한다. 거짓으로 낯을 꾸미고 현란한 말로 사람을 속이는 일은 인과 거리가 멀다. 공자는 진실함과 성실성에 바탕을 둔 도덕적 지성인이 군자로 보았다.

공자는 동아시아의 휴머니즘인 인(仁)을 실천한 역사적 인물로 은나라 주(紂)왕의 음란과 폭정에 대해 간언(諫言)을 했던 미자(微子)계·기자(箕子)·비간(比干) 등 세 사람을 언급했다. 미자는 주왕의 이복형으로 은이 멸망한 뒤에 주(周) 성왕(成王)에게 송(宋)의 초대 제후로 봉해졌다. 기자는 주왕(紂王)의 숙부로 간언하다가 옥살이를 했다. 이후 주의 무왕(武王)에게 하(夏)의 우(禹) 임금이 정했다는 아홉 가지 정치의 원칙인‘홍범구주(洪範九疇)’를 전했다. 또한 맥수지탄(麥秀之嘆)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비간은 주왕의 숙부이자 충직과 직간(直諫)의 대명사로, 바른 말을 한다는 ‘시간(尸諫)’이란 단어가 여기서 나왔다. 필자도 허난성 신샹(新鄕)시 웨이후이시에 천하제일묘라는 임씨(林氏)의 시조인 비간묘를 답사한 적이 있다.

노나라 대사구(현재의 법무부 장관) 벼슬을 한 공자는 ‘군자는 두루두루 소통하되 끼리끼리하지 않고, 소인은 끼리끼리하되 두루두루 소통하지 않는다(君子周而不比 小人比而不周).’ 라 설파하였다. 2019년 대한민국은 대통령이 가장 총애하는 권력 실세 2인자인 ‘조국 일가 사태’로 국론이 양분되어 해방정국의 좌우대립을 방불케한다. ‘광화문 민심’과 ‘서초동 민심’을 통합할 수 있는 인(仁)을 실천하고 국민을 통합할 대한민국 대통령의 모습과 충언과 직언을 할 정치지도자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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