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설] 법치와 '떼치'
[삼촌설] 법치와 '떼치'
  • 설정수 언론인
  • 승인 2019년 10월 07일 18시 13분
  • 지면게재일 2019년 10월 08일 화요일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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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을 위해서라면 죽을 준비가 되어있다’ 1933년 1월 30일 월요일 밤 히틀러의 수상 취임을 축하하는 ‘베를린 퍼레이드’에서 울려 퍼진 노래다. 한밤중에 횃불을 들고 이 행사에 참여했던 나치는 이 축하 행사를 ‘독일의 각성’이라고 불렀다. 히틀러의 지지자들은 다리를 곧게 뻗는 군대식 걸음걸이로 행진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이들의 손에는 제 각각 횃불을 들고 있어 베를린 중심가는 빛의 강이 흐르는 듯했다. 구경 나온 군중들은 소리를 지르며 만(卍)자를 뒤집은 모양의 적백색 하켄크로이츠기를 흔들었다.

베를린 퍼레이드 이틀 뒤 히틀러는 전 국민을 향해 최초로 라디오 연설을 했다. “이제 각 가정이 최전방 입니다. 단결이 우리의 도구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독일을 위해 싸웁시다” 그러나 독일 국민 모두가 히틀러의 말과 약속을 믿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에게 투표할 기회도 주지 않고 불한당을 행정부에 끌어들이다니…” 히틀러의 수상 취임을 불평하는 국민도 많았다. 1차 대전 패전 후 맺어진 베르사유조약을 무시하겠다는 히틀러의 호언에 국민은 불안을 느꼈다.

히틀러가 독일을 전쟁으로 끌고 갈 것이라며 두려워 했다. “이젠 전쟁이 날꺼야. 히틀러가 수상이 됐잖아” 국민 사이에선 전쟁에 대한 불안이 팽배했다. 특히 독일의 유대인들은 그들을 ‘기생충’으로 여기는 히틀러의 반(反)유대인 태도에 대한 공포심에 휩싸였다. 독일 국민 대다수는 실업과 빈곤을 없애겠다는 국가사회주의자들의 약속을 믿었고, 독일을 재통합 하겠다는 히틀러의 말에 환호했다.

히틀러의 호언장담과 약속이 국민을 속이기 위한 속임수였다는 것을 국민이 깨달았을 때 독일은 이미 초토화돼 있었다. 법치를 짓밟고 횃불 군중을 등에 업은 ‘떼치(治)’로 시작된 히틀러의 독재는 1천200만 명에 대한 고문과 살해 혐의로 유사 이래 가장 반 인륜적 범죄로 단죄되었다. 1945년 11월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나치 최고위층 19명이 유죄 판결을 받고 이중 12명은 사형선고를 받았다. 히틀러를 비롯한 선전상 괴벨스 등 히틀러의 최측근들이 잇따라 자살했다. 법치를 팽개치고 ‘떼치’로 ‘조국 사태’을 덮으려고 하는 문재인 정권은 ‘떼치’의 말로를 되새겨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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