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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의 인문학] 시월이 가을에게
[돌봄의 인문학] 시월이 가을에게
  • 최영미 시인·포항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 승인 2019년 10월 10일 16시 23분
  • 지면게재일 2019년 10월 11일 금요일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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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최라라)시인·포항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최영미(최라라)시인·포항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나는 시월입니다. 나는 당신의 심장이지만 당신의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 안에는 활짝 핀 코스모스가 있고 진록의 바다가 있고 깃발 휘날리며 돌아오는 만선의 고깃배가 있습니다. 내가 코스모스 한 송이를 강둑에 내려놓을 때 당신은 자신도 모르게 손끝을 떨거나 가슴에 손을 갖다 댔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바다를 떠돌다 돌아오는 바람을 쓸어 텅 빈 모래사장에 내려놓을 때 당신은 눈을 가늘게 뜨고 먼 수평선을 하염없이 바라보았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당신의 가장 중심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중심에 서 있다는 것은 누군가의 중심이 되어주고 싶다는 뜻입니다. 중심이 된다는 것은 햇살이 뜨거우면 손차양으로라도 그 빛을 가려준다는 뜻이며 바람이 거세면 옷깃을 끌어당겨 단추를 채워준다는 말입니다. 하얀 냅킨을 깔고 수저를 놓아준다는 뜻이며 민망하지 않게 입가를 닦을 휴지를 내밀어 준다는 뜻이며 내 신발을 신으면서 같이 간 사람의 신발도 돌려놓아 준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상대방이 눈치채지 않게 하려는 선의의 의도가 있어야 하고 눈치채지 못한다 하더라도 섭섭해 하지 않는 당연함이 있어야 합니다. 어쩌다 상대방이 눈치채고 고마워, 한마디 한다면 기쁠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쑥스러움이 앞서는 마음이라야 합니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중심이 된다는 것은 까치발을 들어 상대의 자리를 편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며 자신의 흔적을 지움으로써 상대의 자취가 아름답게 빛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나는 시월입니다. 나는 당신의 중심에 서 있지만 나를 몰라준다 하더라도 아무 상관 없습니다. 내가 당신의 중심일 수 있는 것은 당신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나는 당신의 부름으로 꽃을 피우고 당신의 부름으로 단풍을 물들일 뿐 나는 당신으로 인하여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나는 당신의 중심이지만 당신의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도 중심은 있습니다. 나도 모르는 어떤 중심이 나의 눈을 들어 황금 들판을 보게 하고 나의 손을 들어 누군가의 손을 잡게 하기도 합니다. 나는 가끔 한 번도 본 적 없는 내 중심에 대해 생각하곤 합니다. 신호라도 보내주듯 심장이 쿵쿵거리면 그곳에 가만히 손을 얹어보기도 합니다. 여기 있구나, 나는 단지 느낄 뿐 그것을 본 적은 없습니다. 나는 그 중심이 듣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한 번씩 중얼거리곤 합니다. 고마워….

나는 당신의 중심이며 내가 스러지면 당신이 상심할까 걱정이지만 그 또한 당신이 받아들일 것을 압니다. 그 순간에도 나는 당신의 중심으로 존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러지는 것도 당신의 삶이며 언젠가 다시 일어선다는 것도 당신의 삶이므로 나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어질 뿐 당신에게서 떠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나는 당신의 중심에 서 있고 당신의 그 어디에도 내가 들어있지 않은 곳은 없습니다. 나는 당신이 날마다 코스모스처럼 웃기를 바라지만 당신의 침묵과 슬픔 속에서도 중심이 될 것입니다. 그곳에서 다시 빨갛게 웃는 쪽으로 당신을 움직이게 하려고 끊임없이 안간힘을 쓸 것입니다. 나의 중심인 당신, 당신이 웃어야 단풍이 이름다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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