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단] 구름치* 버스정류장
[아침시단] 구름치* 버스정류장
  • 박서영
  • 승인 2019년 10월 10일 18시 23분
  • 지면게재일 2019년 10월 11일 금요일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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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떠나자 빈방이 생겼다고 구름치 버스정류장에 살
고 있는 새가 말했다. 어쩌다가 이곳에 살게 되었는지
궁금했으나 그건 내 슬픔과는 무관한 일.
나는 구름치에서 방 한 칸을 구하고 하룻밤 자고 떠나
면 그뿐이다. 어쩌다가 내가 이곳에 내리게 되었는지 새
는 궁금할 만도 한데, 그건 정류장 의자에 앉아있는 새와
는 무관한 일. 구름이 구름의 시간을 넘어간다. 구름은
짓다만 집의 창문이 되고, 시골버스에서 내리는 낯선 손
님이 되고, 손님은 그 정류장의 이름이 된다. 나는 내린
다. 정류장 의자 밑에서 참새들이 날아오른다. 지저귄다.
네가 떠나자 빈 방이 하나 생겼을 뿐이라고.

*구름치: 전남 장흥군 장흥읍 금성2구 구름치 마을




<감상> 사람의 존재감이란 방 한 칸을 구하고 하룻밤 자고 떠나면 그뿐인 것이다. 신이라도 되는 냥 오만함으로 가득한 사람은 자신이 떠나면 빈자리가 허전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냥 빈방이 하나 생겼을 뿐이라고 새가 말해 준다. 아무도 근황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는다. 내 슬픔과도 무관한 일이요, 정류장 의자에 앉아 있는 새와는 더욱 무관일이요, 그냥 인간이 인간의 시간을 살다갈 뿐이다. 구름이 구름의 시간을 살다가 잠시 정류장에 내려 ‘구름치’라는 이름이 된 것처럼. 이 사실을 홀로 떠나기 전에는 깨닫지 못하고, 낯선 손님이 되어야만 겨우 깨닫는 미혹한 인간이라니. 인생이란 언제 떠날지 모르고 잠시 기다리는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것이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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