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오래 전이다.

교직 생활을 하면서 동료들과 술자리를 많이 했을 때다. 그때 한 10여 년 선배 되는 분(행정실장)이 나에게 자주 한 말이 생각난다. 서 교무(나를 지칭)는 가슴이 열려 있어 가슴 속에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들어가 앉을 수 있다고 말했었다. 나와는 친하기가 쉽고, 사귐이 편하다는 뜻으로 생각되어 기분이 좋았었다. 생각하는 방향이 같고, 추구하는 바가 같아서 마음에 든다는 말인 것 같다. 또 나를 두고 술잔에 맥주를 따르면서 짐작(斟酌)의 잘못으로 술이 넘칠 때 손이 먼저 가는 것이 아니라 입이 먼저 갈 만큼 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도 했었다. 술친구가 많았지만 오래 마음에 남는 분이다. 지금도 가끔 만나 나이와 관계없이 정담을 나누는 사이다.

내건(內楗)이란 말이 있다. 전국시대 신비의 인물로 꼽히는 ‘귀곡자’가 쓴 말로 상대방의 가슴속에 들어가 빗장을 걸 수 있으며, 상대도 내 가슴속에 들어와 똬리를 틀 수 있어 함께 일을 도모하기 좋은 인간관계를 말한다. 내가 상대방의 마음속에 들어가 건의한 것을 그대로 실행에 옮기도록 하는 신뢰관계를 두고 하는 말이다.

세상에는 3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 미래를 내다보고 미리 준비하는 사람,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서야 대처하는 사람, 발등에 불이 떨어져도 헤매는 사람이다. 그중에서 일을 잘하는 사람은 과거를 보고 현재를 살펴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야 일을 주도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염두에 둘 것은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에 얽혀 있는 사람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특히 핵심인력과는 내건(內楗)을 통해 한 몸처럼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요즘 ‘통섭’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을 접목한 생각의 틀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한편에서는 경영학에 인문학을 접목하기 위한 시도도 엿보인다. 세상을 해석하는 새로운 생각의 틀, 새로운 사고의 패러다임을 찾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인문학은 과거의 인류가 걸어온 삶의 지혜를 담고 있는 그릇이다. 오늘날 직장생활을 통해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은 전혀 새롭게 나타난 것이기보다는 어찌 보면 과거의 일이 시점과 형태를 달리하여 반복되어 나타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과거의 것을 단지 과거의 것으로만 돌릴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엘빈 토플러는 ‘제3의 물결’에서 인류가 진화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인류의 ‘공유된 기억’을 잘 정리하고 재생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이라고 말한다. 과거의 경험을 오늘에 맞게 정리하여 재생할 수 있을 때 과거도 살고, 미래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과거가 담고 있는 이러한 심오한 의미를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다면 직장에서 일을 잘하는 사람, 성공하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건 오히려 당연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과거 속의 귀곡자가 오늘날에 던지는 침묵 속의 깊은 혜안이라 생각한다.

요사이 뉴스를 거의 독점하고 있는 사안이 있다. 아무리 시끄러워도 임명권자와 발탁된 관료가 정말 ‘내건(內楗)이 확실히 맺어져 태풍 ’타파’나 ‘미탁’ 정도로는 끄떡도 않는 신뢰관계가 형성되어서인지 요지부동이다. “나는 너를 믿고, 너는 나를 믿는다.”는 본보기를 보여주는 같다. 두 사람의 믿음이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룰 수 있다는 확신에 차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필자는 과거를 살펴 제나라 환공과 관중의 관계나 강태공과 주(周) 무왕의 관계처럼 발전할 수 있을지를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어려운 시기에 국론 분열을 종식시키고 국민의 가슴에 희망을 심어줄 일이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