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이 인간과 생물에게 미치는 효과는 불분명하지만 대체적으로 특별한 경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분홍색은 심신을 안정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이커 밀러 핑크’라는 명도의 분홍색은 1980년대 미국에서 인기를 끌었다. 이 색의 효과를 연구한 교수 두 명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이름 붙여졌다. 핑크의 전설이라고 불리는 이 색은 우리 말로 하면 ‘연분홍’ 정도 되는 색이다.

베이커 밀러 핑크는 교도소 등에서의 실험으로 혈압을 떨어뜨리고, 폭력성도 낮아지게 만든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때문에 여러 교도소 감방과 학교 교실 등에 이 색깔이 칠해졌고, 실제로 효과를 보면서 미국에서 한 때 인기를 끌었다. 핑크의 부드러운 색은 꽃향기를 연상시키거나 로맨틱한 이미지를 전달하기 때문에 여성용 화장품이나 옷 등에 많이 사용된다.

몇 년 전부터 전국 곳곳에 이 핑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가을이 되면 관광지마다 ‘핑크뮬리그라스(pink muhly grass)’가 일렁이고 있는 것이다. 쌀쌀한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분홍색을 띠는 이 식물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기 때문에 사람들을 유혹한다. 최근 들어서는 핑크뮬리 뿐 아니라 키 큰 갈대 같은 ‘팜파스(pampas gras)’도 곳곳에 심어져 관광객들의 눈길을 끈다. 핑크뮬리는 미국 원산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전국에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다. 전국의 시·군이 앞다퉈 공원이나 자투리 땅에다 심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의 관광지 마다 관광객들은 무리 지어 핀 솜사탕 같은 핑크뮬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댄다. 경주시는 2017년 첨성대 주변 공터에 군락지를 만들어 ‘핑크뮬리 특수’를 누리고 있다. 부산 낙동강 대저생태공원 핑크뮬리 군락지에도 하루 수천 명의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제주도 휴애리자연생활공원에도 울산대공원에도 안동 낙동강, 문경 영강변에도 포항 시청 앞에도 온통 핑크뮬리다.

외래종인 핑크뮬리는 생명력이 강해 토종 식물과 생태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다. 농촌 풀밭에 온통 줄을 치며 줄기를 뻗어 처치 곤란인 북아메리카 원산의 ‘가시박’처럼 핑크뮬리가 보기는 좋지만 장차 우리나라 식물 생태계를 크게 교란하지 않을 지 걱정인 것이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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