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재 이언적(1491∼1553)의 고향은 경주 양동마을이다. 회재는 만년에 관직을 그만두고 양동에서 가까운 안강 옥산의 한 시냇가에 사랑채 독락당(獨樂堂)과 정자 계정(溪亭)을 지어 자연을 벗 삼으며 약 6년간 성리학 연구에 전념했다. 회재가 세상을 떠난 후 독락당에서 가까운 곳에 계곡을 사이에 두고 선조의 사액서원인 옥산서원(玉山書院)이 지어졌다.

회재가 관직에서 돌아와 기거했던 독락당과 계정은 건축적인 특수성으로 유명하다. ‘독락당’은 말 그대로 ‘혼자 있음을 즐기는 집’ 또는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집’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당호를 ‘독락’이라 지은 것은 스스로 고독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결기의 표현일 것이다.

독락당에는 ‘고독’을 ‘독락’으로 승화시키겠다는 내면 심경이 건축 구조에서도 잘 드러난다. 햇빛이 드는 남쪽은 높은 담으로 둘러치고, 동쪽 담을 헐어낸 자리에 작은 살창을 터서 계곡 물소리를 들을 수 있게 했다. 외로움이 사무칠 땐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동쪽 개울가의 쪽 난간이 달린 작은 정자, ‘계정’에 기대 앉아 꽃 피고 잎 지는 세월을 보냈을 것이다.

권근의 ‘독락당기’엔 홀로 즐기기의 진면목이 보인다. “봄꽃과 가을 달을 보면 즐길만하지만 꽃과 달이 나와 함께 즐겨주지 않네. 눈 덮인 소나무와 반가운 빗소리도 나와 함께 즐기지 못하니 독락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글과 시도 혼자 보는 것이며 술도 혼자 마시는 것이어서 독락이라네…” 옛 선비들의 ‘독락’에는 고독을 승화한 풍류가 깃들어 있다지만 일면 스스로 외부와 단절을 자초해 학문적인 옹이를 더 단단하게 하려는 학자적 의지가 담겨있다.

독락당에서 천착한 기(氣)보다 이(理)를 중시한 회재의 학설은 영남 사림파의 이론적 토대를 만들어 퇴계 이황에 승계됐다. 회재가 학문연구를 한 독락당에는 보물 16종 등 많은 유물이 전해지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이 이들 유물을 정리해 지난 15일부터 오는 12월 15일까지 ‘회재 이언적, 독락당의 보물 서울나들이’ 고문헌 특별전을 열고 있다. 500년 만에 ‘독락’의 회재가 모처럼‘여민락(與民樂)’ 서울나들이를 했다니 한양 가면 꼭 한 번 찾아 봐야겠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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