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끝에 닿는 은은한 솔향 맡으며 깊어가는 가을정취 만끽

포항 기북 덕동마을숲

포항시 북구의 오래된 마을인 기북면 오덕리에 위치한 ‘덕동마을’은 경주의 양동마을과 맥이 닿아 있는 곳이다.

경주의 양동마을은 아시다시피 회재 이언적 선생의 족적을 느낄 수 있어 유명하다.

회재 선생은 조선시대 유학을 대표하는 ‘동방 5현’의 한 사람으로 정여창, 김굉필, 조광조, 이황과 함께 성균관 문묘에 위패가 봉안돼 있는 대유학자이다.

덕동마을의 입향조인 사의당 이강은 회재 이언적 선생의 동생인 농재 이언괄(聾齋 李彦适 1494~1553)선생의 후손이다.

즉, 덕동마을은 이언적 선생의 아우인 농재 이언괄 선생의 후손이 이주해 여강이씨 집성촌으로 형성됐다.

이언괄의 호는 이언적의 편지에서 비롯했는데, ‘일체의 시사(時事)에 대해 어리석은 사람처럼 귀먹은 사람처럼 하라’는 가르침에 따라 호를 귀머거리 농(聾)자를 써서 ‘농재(聾齋)’라 했다.

포항 기북면 덕동마을숲으로 소풍온 어린 아이들이 아장아장 걸음으로 언덕을 오르고 있다.

조정에서 여러 번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고, 고향에서 학문을 닦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았다 한다. 형 이언적이 조정에 나아가 관직 생활을 하는 동안 형 대신 부모님을 극진히 모시는 등 남다른 효성을 보였고 형과의 우애 또한 돈독했다. 그러니 그의 후손들이 ‘덕’자를 마을이름에 붙여 ‘덕동’이라고 한 것이 이해가 된다.

덕동마을은 비학산이 둘러싼 안자락에 살며시 자리한 고택들로 이뤄져 고즈넉함과 전통미를 그대로 간직한 곳이다. ‘덕동(德洞)’이라는 의미는 ‘덕 있는 인물이 많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 하면, 신라시대 때 조성됐다는 덕인사라는 사찰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얘기도 있다. 시대에 따라 ‘덕’을 유교적 개념이나 불교문화로 받아들일 수 있을 테다. 아무튼 여기 옛 지명이 ‘송을곡(松乙谷)’으로도 불렸다고 하는데, 덕동마을 사람들은 고택과 마을의 내력을 전하는 유물과 유산을 잘 보전해 덕동민속전시관과 체험관을 운영하고 있다. 무엇보다 덕동마을이 더욱 사랑스러운 이유는 뛰어난 숲이 같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덕동 마을숲이다.

덕동마을을 포함한 오덕리 일대는 전통문화마을로 지정되면서 옛 숲을 복원하고 관리해 아름다운 산책로를 조성해 왔다. 특히 덕동 마을숲은 350여 년 이상의 역사를 가졌는데 풍수지리에 의해 산줄기가 마을 양옆을 감싸고 있어 마을 앞쪽이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조성하는 ‘수구막이숲’ 형태이며, 크게 송계숲, 정계숲, 섬솔밭이라 부르는 도송(島松)으로 구성돼 있다.

덕동마을에 들어서면 이 마을의 유서 깊음을 대변하는 듯 입구에서부터는 죽 늘어선 소나무숲이 조성돼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숲이 마을로 들어오는 방문객을 먼저 맞이한다.

덕동 마을숲의 수종은 소나무가 많은데 마을 입구에 조성된 송계숲은 잘 생긴 소나무들 사이로 느티나무 당산목과 은행나무, 팽나무 등이 자리하고 있다.

포항 기북면 덕동마을 섬솔밭(도송)과 호산지당 연못.

정계숲은 마을 중간 부근의 숲으로 이 마을의 자랑인 용계정을 한층 돋보이게 하는 숲이다. 여기에 도송이라는 섬솔밭이 있는데 이 곳이 특히 아름다운 이유는 섬솔밭 앞에 ‘호산지당’이라는 연못이 있기 때문이다.

포항 기북면 덕동마을숲 호산지당 연못과 주변숲이 조화롭게 어울려 한폭의 그림을 연상케 하고 있다.

덕동은 예로부터 지형이 산세는 강하나 수량이 적어 인물이 배출되지 않는다고 전해왔다고 한다. 섬솔밭 앞은 원래 물이 흐르던 곳이었으나 1930년대는 덕동사설학당이 건립돼 학당 운동장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던 것을 1974년에 흙둑을 쌓고 양어장을 만든다는 구실로 물을 끌어들였고 2008년 연못을 만든 게 오늘날 호산지당이다. 그리고 회나무 우물도 복원을 했다. 모두 다 수량이 적은 형세를 보완하기 위해서였을 테다.

힘차게 줄기를 뻣은 덕동마을숲 나무마다 이름표가 달려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다. 이름표는 이곳 주민이 나무 하나씩을 맡아 관리하면서 해당 나무의 관리자를 표기한 셈이다.

그런데 여기 마을숲에 가면 유심히 챙겨보았으면 하는 게 있는데, 나무마다 이름표가 달려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다. 이름표는 이곳 주민이 나무 하나씩을 맡아 관리하면서 해당 나무의 관리자를 표기한 셈이다. 물론 이미 오래전부터 덕동마을 주민은 마을숲을 관리하면서 수입과 지출을 정리한 장부 ‘송계(松契)’를 작성했다고 한다. 송계는 우리 농촌에서 마을 단위의 품앗이나 두레를 통해 협업하던 방식이 모태가 됐으리라고 본다. 마을 주민 간의 협업이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조직된 모임이 나무를 가꾸고 숲을 보전하는데도 함께할 수 있게끔 고안한 것이리라. 오늘날 공동체 정신이 이곳에서는 벌써부터 실천돼 왔다는 데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포항 덕도마을을 알리는 경계석 뒤로 숲이 펼쳐져 있다.

한편 이렇게 집마다 대를 이어가며 자기가 돌보는 나무를 살핀다는 일이 한 집안을 잇는 하나의 구심점이 될 수도 있으리라고 본다. 이렇게 오랜 시간 주민이 가꾼 마을숲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이곳은 1992년 문화관광부로부터 문화마을로 지정됐고, 2001년에는 환경친화마을로까지 지정받게 됐다.

또 2006년도에는 아름다운 숲 전국대상으로 ‘덕동 마을숲’이 선정돼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으로 인정받고 있다.

포항 기북 덕동 마을숲에 있는 돌다리인 통허교.

덕동마을에는 30여 채의 고택이 남아 있으며, 이렇게 마을숲에 이르는 길을 따라 찬찬히 걷다 보면 용이 누웠다가 승천했다는 와룡암, 홍예가 아름다운 돌다리인 통허교, 용계천과 호산지의 물이 만나는 합류대, 회나무 우물 등 아기자기한 자연을 만날 수 있다.

덕연구곡.

그러고 보니 덕동마을 곳곳에는 굽이 흐르는 물길과 함께 아름다운 절경도 많은데, 여기 사의당을 중건했을 당시 기문을 지은 계옹 이헌속이 명명한 덕계구곡(德溪九曲)과 덕연구곡(德淵九曲)이라 일컫는 아홉 개의 명소가 있다. 본래 주자의 무이구곡에 연원을 둔 구곡문화를 반영하는 것이라는데 아름다운 자연을 묘사하면서도 여기에 성리학을 통한 수행의 과정을 담고 있다고 한다.

용계정이 자리하는 곳에 위치한 연어대(鳶魚臺)

먼저 계옹 선생이 명명한 덕계구곡의 제1곡은 물이 흐르는 연못이라는 수통연(水通淵), 제2곡은 속세를 멀리한 너른 바위라는 뜻의 막애대(邈埃臺), 제3곡은 수월암(水月庵), 제4곡은 용계정, 제5곡은 섬솔밭, 제6곡 합류대(合流臺), 제7곡은 구름이 피어오르는 연못이라는 운등연(雲騰淵), 제8곡은 용이 누운 바위라는 뜻의 와룡암(臥龍巖), 제9곡은 자금산을 가리킨다. 전해지는 또 다른 구곡인 덕연구곡은 수통연, 막애대, 서천폭포, 섬솔밭, 용계정이 자리하는 곳에 위치한 연어대(鳶魚臺), 합류대, 운등연, 와룡암, 가래못이다.

포항 용계정과 덕동숲(명승 81호)지정.

이렇게 두 개의 구곡에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용계정(경북 유형문화재 제243호)은 덕동마을의 자랑이다.

용계정 현판.

이 건축물은 농재의 4대손인 사의당 이강이 1687년에 착공해 손자인 이시중 때 완성하게 됐고, 이후 이시중의 손자인 이정응이 1778년에 다시 중수해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름은 정자라고 붙였지만 형식면에서는 누각인데 정자 앞에는 용계라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바위가 운치 있게 흐트러져 그야말로 선경이다.

사의당 현판.

용계정이 완공되고 80년 정도 지나 후원에 이강의 5대 조부와 농재 이언괄을 배향할 사당인 세덕사(世德祠)를 건립했다. 그리고 용계정인 사의당 본채를 세덕사 문루로 바치고 ‘연연루’라 이름을 바꾸었다. 그러다가 고종 5년(1868)때 대원군의 서원 철폐시 훼철하라는 명이 있게 되자 연연루로 변경된 현판을 ‘사의당’과 ‘용계정’ 옛 현판으로 바꿔달고, 하루 밤 사이에 후원에 지어졌던 다른 건축물과 구분되게 그 사이에 담장을 축조해 마치 사당인 세덕사와는 구분되는 독립된 건물로 보이게 해 사의당 건물은 훼철되는 화를 면하게 됐다.

덕분에 지금도 이곳 마을주민들은 마을 회의가 있을 때는 용계정을 이용한다고 하는데, 용계정 주변으로는 수백 년 된 은행나무, 향나무, 배롱나무 등이 있어 옛 선비의 풍모를 가늠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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