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성일 편집부국장
곽성일 편집부국장

가을은 자연의 위대함에 경배하는 계절이다.

추수를 마친 부부가 석양이 지는 들판에서 기도를 올리는 밀레의 만종이 떠오르는 가을이다. 지나간 봄과 여름은 위대했노라고 가을은 말한다. 봄과 여름이 있었기에 가을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가을엔 경건한 촛불을 밝혀야 한다.

올해는 유난한 태풍이 가을을 할퀴고 지나갔다. 가을 상처는 인간의 가슴에 생채기를 남기고 있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다. 빛과 바람, 인간의 수고로움이 결실을 맺는 가을이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결실에 경건한 마음으로 일용할 양식들을 거둔다.

환희보다는 엄숙함이 찾아오는 계절이다. 가을 풍요에는 지난 세월 수고로움이 묻어있다.

이제 내면으로 치닫는 겨울을 준비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을바람은 왠지 속이 꽉 찬 느낌이다.

그러나 올해 가을은 가을 서럽지 못하다.

태풍의 상처는 세월이 지나가면 잊힌다. 인간의 상처는 그렇지 못하다.

엄숙하고 경건해야 할 가을 하늘에 함성이 가득하다.

‘서초동’에서…,‘여의도’에서.., ‘광화문’에서….

수백만 명의 인파가 물결을 이룬다. 그 물결은 한 물줄기가 아니다. 서로를 집어 삼킬듯한 마주 달리는 물결이다. 거대한 물결은 굉음을 내며 마주 보고 달려든다. 서로에게 ‘다름’이 아닌 ‘틀림’을 강요한다. 마치 전장에서 적군을 만난 듯하다.

샛강은 한데 모여 큰 강물을 이룬다. 그래서 도도한 물줄기를 형성한다.

그 물줄기는 대지를 적시고 문명을 일으킨다. 샛강은 다르지만 틀리지는 않는다.

샛강은 다른 샛강을 만나지 못하면 큰 강물이 되지 못한다, 혼자서는 늘 샛강일 수밖에 없다.

샛강은 큰 강물을 이기지 못한다. 그래서 샛강은 서로 만나야 한다. 샛강은 다른 듯해도 다르지 않다.

하나가 될 수밖에 없는 숙명적인 존재다. 배척한다고 해서 배척 되지 않는다, 언젠가는 서로 만나야 한다.

큰 강물로 만나면 그동안의 우격다짐은 느낄 새도 없이 사라진다. 그것은 서로 하나가 돼 큰 물결이 되기 때문이다.

큰 물결로 모여든 샛강은 과거에 연연할 수 없게 된다.

작은 물결 시절에 겪었던 걸림돌은 큰 강물이 되고 보니 다시는 걸림돌이 되지 못하다는 현실을 만나게 된다.

구상 시인은 말한다.

‘강은 과거에 이어져 있으면서/과거에 사로잡히지 않는다//강은 오늘을 살면서/미래를 산다//강은 헤아릴 수 없는 집합이면서/단일과 평등을 유지한다.’

강은 다른 강과 만나 바다가 된다. 망망대해서는 다름이 있을 수 없다. 우주와 같은 넓은 세계와 하나로 연결된 깨달음에 도달하게 된다,

‘서초동’과 ‘광화문’이 샛강이라면 만나 큰 강물이 되어야 하고, 강물이라면 바다를 이뤄야 한다.

다시는 ‘틀림’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 샛강에서 강물로, 강물에서 바다가 돼야 한다. 푸른 가을 하늘에 적의(敵意)에 찬 외침을 덧칠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에 함몰되지 말고 ‘미래’를 내다볼 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동체 전체를 위한 공동선(共同善)을 추구해야 한다, ‘대한민국 행복’이라는 공동선(共同善)이 기다리고 있다.

곽성일 편집부국장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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