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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광장] 불안 마케팅에서 벗어나기
[아침광장] 불안 마케팅에서 벗어나기
  • 손화철 한동대 교수
  • 승인 2019년 10월 20일 16시 26분
  • 지면게재일 2019년 10월 21일 월요일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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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화철 한동대 교수
손화철 한동대 교수

한국에서 제일 잘 팔리는 상품은 불안이다. 북한이 쳐들어 올 까봐 불안하고, 좌파 대통령이 나라를 베네수엘라로 만들까 불안하고, 노후에 병에 시달리거나 먹고살지 못할까 불안하고, 아이가 좋은 대학에 못 갈까 봐 불안하다. 하루하루가 불안으로 가득 차 있으니 그 불안을 잠재워줄 물건이나 서비스, 지도자 등 무엇이든 잘 팔린다. 오래 노력하여 겨우 극복했으나 아직도 그리워 마지 않는 독재정권이나, 마음에 안 들면 모두 좌파로 만들어 버리는 유튜브나, 밑도 끝도 없이 계속되는 보험광고나, 도대체 효과가 있는지 검증할 방법이 없지만 모두가 부러워하는 고액 입시 컨설팅… 모두 불안 마케팅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생각해 보면 유한한 인간이 불안한 것은 당연하다. 언제 죽을지 모르고 내일 일을 알 수 없으니 불안하고, 그 불안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삶의 원동력이 된다. 인류의 모든 문화가 어찌 보면 그 불안을 극복하려는 투쟁의 결과이다. 그러나 그런 원초적인 불안을 넘어선 불안은 우리의 영혼을 갉아먹는다. 유한한 인간이라 잠재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불안과, 언제 이유 없는 죽음을 당할지 모르는 수용소 포로의 불안이 같을 수 없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판매되는 불안은 철학과 종교가 고민하는 깊은 내면의 불안과 거리가 멀다. 불안마케팅은 협박에 의존하고, 협박에 의해 생기는 불안은 구체적이고 자극적이다.

불건강한 불안이 일상화되면 여러 부작용이 일어나는데 그중 하나가 불안해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이다. 대학에 안 가겠다고 하는 아이는 철부지가 되고, 오늘의 즐거움에 집중하겠다며 여행을 떠나는 젊은이는 무책임한 인생이 된다. 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어른은 자식 짐 지울 사람이고 전쟁 걱정을 안 하는 사람은 매국노다. 이런 식으로 불안이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나면 일평생 불안에 떨다 죽어야 정상적인 삶을 사는 셈이 된다.

하지만 불안을 느낀다고 불안을 야기한 사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불안의 전형적인 증상은 비합리적인 반응이고, 그것이야말로 최악의 대응이다. 따라서 불안할 때에는 그 불안을 억누르는 것이 해결의 시작이다. 불안 마케팅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협박의 내용을 의심하는 것이다. 차근차근 협박의 내용을 뜯어보고 사실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또 협박과 함께 제공되는 대안을 통해 누가 가장 이익을 보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좋은 대학에 가려면 고액과외를 해야 한다는 제안처럼, 협박은 대개 대안과 함께 오고, 그 대안을 통해 확실한 이익을 얻는 자들이 있게 마련이다.

불안 마케팅을 한다고 해서 다 거짓말은 아니다. 불안할 만한 상황도 있고, 협박의 내용이 사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때에도 안절부절못하며 화를 내고 미워하기보다 그 문제의 근원을 찾아 제거할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 혹시 해결책이 없는 문제라는 것이 밝혀질 수도 있는데, 이럴 때는 깨끗이 마음을 접어야 한다. 해결책도 없는 문제 때문에 불안해하면 나만 손해다.

어떤 경우이건 불안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는 나쁘다. 불안해하지 않겠다고 의식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나의 불안을 부추겨 이익을 얻으려는 부적절한 불안 마케팅으로부터 단호히 거리를 두어야 하고, 불안할 만한 일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는 데만 집중해야 한다. 남의 불안을 불필요하게 조장하는 행동도 삼가야 한다. 때때로 문제를 알아야 한다며 친절하게 불안해야 할 이유를 알려주는 사람이 있는데, 벼랑에 같이 매달려 있으면서 여기서 떨어지면 몸이 어떻게 으스러지는지 찬찬히 설명해 줄 필요는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막연한 불안을 부추겨 나를 조종하려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과감하게 떨쳐내야 한다. 때로는 절교가 가장 합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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