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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설] 유비와 애민
[삼촌설] 유비와 애민
  • 설정수 언론인
  • 승인 2019년 10월 21일 16시 53분
  • 지면게재일 2019년 10월 22일 화요일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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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주지사 유표가 죽자 그 아들 유종이 그 자리를 물려받았다. 조조가 형주를 공격하자 유종은 조조에게 투항, 형주를 바쳤다. 유표에게 의탁하고 있던 유비는 조조의 추적을 피해 강남으로 달아났다. 유비의 피난길에는 유비의 후덕한 인품을 흠모하는 형주의 많은 백성들이 유비의 뒤를 따랐다. 행군하는 도중에 따르는 무리가 점차 늘어나 당양에 이르렀을 땐 10만 명이 넘어섰다.

분초를 다투어 빨리 후퇴해야 하는데 무거운 피난 보따리를 짊어진 무리가 많아 하루에 고작 10여 리 밖에 행군하지 못했다. 제갈량을 비롯한 유비의 참모들이 유비에게 권했다. “지금 따르는 사람은 많아도 무장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조조의 군사가 들이닥치면 무슨 수로 막아내겠습니까. 따르는 백성을 버리고 빨리 달아나야 합니다” “큰일을 하려면 반드시 사람으로 근본을 삼아야 한다. 지금 사람들이 나를 따르는데 어떻게 버리고 갈 수가 있겠는가.” 유비는 백성을 버릴 수 없다고 강력히 호소했다.

당양 장판에서 조조에 패한 유비는 제갈량 장비 조운과 더불어 기병 수십 명만 거느리고 구사일생으로 사지를 벗어났으나 그 같은 위급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백성을 버리지 않았다. 절체절명의 순간에서도 백성을 버리지 않은 유비의 애민정신은 천하 사람들로부터 크게 동정을 받아 훗날 세력을 키우는데 큰 밑천이 됐다.

“유비는 위급한 상황에 처했어도 믿음과 의리를 지켰고 사태가 급박하더라도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이치에 벗어나지 않았다”고 사람들은 유비를 칭찬했다. 유비가 삼국정립의 대업을 이룩하는 데는 백성들과 고락을 함께 하고 백성들의 뜻을 존중하는 리더십이 큰 몫을 했다. “민심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를 숙지한 유비는 백성의 마음을 깊이 헤아려 정치를 너그럽게 펼쳤다.

유비에 관한 역사기록엔 세금을 가혹하게 거두었다는 기록이 없다. “유비가 끝내 대업을 이룬 것은 당연한 것이다.” 진나라 학자 습착의 유비의 애민통치 칭송이다. ‘조국 사태’를 두고 국민의 상식과 동떨어진 발언을 연발한 문재인 대통령의 언행은 국민을 팽개친 것처럼 보였다. 죽은 유비가 실소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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