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쥐뿔도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사람을 가리킬 때 흔히 쓰는 말입니다. 전해지는 우리 설화에 따르면 원래 ‘쥐 좆도 모른다’였는데 그 표현이 일반적으로 사용하기에 부적절해서 그렇게 변형된 것이라 합니다. 그런 순화 작용이 아무렇게나 이루어진 것은 물론 아닙니다. 최소한, 밖으로 뾰족하게 돌출된 것은 다 ‘뿔’로 볼 수 있다는 언중(言衆)들의 암묵적인 합의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말이라는 것은 한두 사람의 뜻으로 좌우되지 않습니다. 그것 말고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뿔’의 어떤 상징성이 그러한 전화(轉化·바뀌어서 달리 됨)를 가능케 했는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뿔과 관련된 원초적, 전설적 동물은 용(龍)입니다. 용은 물의 생생력(生生力)을 가진 존재이면서 동시에 엄청난 파괴력을 행사하는 존재로 알려져 있습니다. 용과 관련된 신화나 전설들의 속내를 살펴보면 그것들이 표면적으로 무엇을 이야기하든 그 심층적 의미는 그것으로부터 자유를 획득하는 인간의 이야기입니다. 용에게서 뿔이 제거되면 거대한 뱀이 됩니다. 뿔이 제거된 용, 큰 뱀은 여성성, 대지(大地)의 신, 지하세계, 근원적인 악 등과 관련되어 이야기됩니다. 또 있습니다. 연금술사들은 자신의 작품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최초의 자질을 ‘우로보로스(꼬리를 물고 있는 뱀)’으로 불렀습니다. ‘최초’로 보내져야 다른 성질이 부여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심리학에서 용과 뱀은 원초적 무의식의 상태를 상징합니다. 서양과는 달리 중국에서는 용을 신성한 존재로 여겼습니다. 물과 비를 가져오는 권능적 존재로 숭배했습니다. 왕이 관례적으로 용의 상징을 독점한 것도 그런 까닭에서였습니다. 용은 곧 뿔이었습니다.

‘쥐좆’이 ‘쥐뿔’로 바뀌는 과정에도 당연히 뿔(the Horn)의 심볼리즘이 작용합니다. 핵심은 남성성입니다. 모든 뿔은 남근(男根)의 상징입니다. 좆과 뿔의 호환은 그래서 가능합니다. 뿔이 제거된다는 것은 곧 거세된다는 뜻입니다. 뿔을 가진 존재는 정확하게, 축축하고 어두운 ‘뿔 없는 존재들’과는 정반대의 것을 뜻합니다. 신화나 옛사람의 사고에서 뿔은 태양 광선의 물질적(형태적) 구현이었습니다. 그것은 동적이고 남성적이고 열화의 원칙 그 자체였습니다. 이 동적인 태양빛의 작용(형상)과 원칙은 창조적인 동시에 파괴적입니다. 여체 안에 들어가서 남근이 하는 것처럼 땅속으로 스며든 햇살은 씨앗을 싹트게 하고 풍요로운 결실을 맺게 합니다.

동시에 그것은 타자의 삶을 태우고 파괴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태양의 원칙과 조우할 때 그들은 언제나 우리를 관통하고 재단하는 ‘집행자’의 모습을 띱니다. 뿔은 태양의 원칙이 물질적 형상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미켈란젤로는 모세에게 뿔을 부여했습니다. 그때 그의 뿔은 높은 정신적 능력을 표상하는 것이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도 특별한 힘의 상징으로 그의 머리에 숫양의 뿔로 표상된 두 개의 뿔을 달고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뿔의 상징적 의미(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는 수많은 전설과 예술 전통 속에서 확인됩니다. 로마의 투기장에서 최초의 기독교 순교자의 몸을 들이받은 성난 황소의 뿔은 영원히 맹목적 분노, 파괴적 충동, 죽음을 부르는 힘의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반대도 있습니다. 기독교 전통에서 일각수(一角獸)는 마리아의 자궁을 관통하는 성령과 동일시됩니다(‘Jolande Jacobi, Complex Archetype Symbol in the Psychology of C.G. Jung’ 참조). 나라가 많이 시끄럽습니다. 여기저기서 뿔들이 많이 솟습니다. 뿔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합니다. 개중에는 용뿔도 있을 거고 쥐뿔도 있을 겁니다. 아무쪼록 쥐뿔이 용뿔 몰아내는 막된 세상은 안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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