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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단] 비 오는 날 늙은 참나무 아래 멈춰서다
[아침시단] 비 오는 날 늙은 참나무 아래 멈춰서다
  • 울라브 하우게
  • 승인 2019년 10월 23일 16시 18분
  • 지면게재일 2019년 10월 24일 목요일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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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비 때문에
길가
늙은 참나무 아래
멈춰선 건 아닙니다, 넓은 모자
아래 있으면 안심이 되죠
나무와 나의 오랜 우정으로 거기에
조용히 서있던 거지요 나뭇잎에 떨어지는
비를 들으면 날이 어찌 될지
내다보면
기다리며 이해하며.
이 세계도 늙었다고 나무와 나는 생각해요
함께 나이 들어가는 거죠.
오늘 나는 비를 좀 맞았죠
잎들이 우수수 졌거든요
공기에서 세월 냄새가 나네요.
내 머리카락에서도.

<감상> 넓은 떡갈나무 잎은 이슬비를 피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나무는 넓은 모자를 쓰고 있거나 거대한 우산을 받쳐 든 것 같다. 나무와 오래 인연을 맺다보면 나무 아래서 비가 그칠지 더 세차게 내릴지 가늠할 수 있다. 함께 비를 맞고 함께 늙어가다 보면 내 몸은 어느새 나무가 된다. 잎들이 질 때면 나무 아래서 비를 맞고 지나가는 바람에게서 세월 냄새를 맡게 된다. 나뭇잎 떨어지듯, 떨어지는 한 올의 머리카락에도 세월의 무게와 냄새가 묻어난다. 나무도 늙으면 잎과 열매를 많이 맺지 못하고, 오래 잎을 매달게 할 수 없으니 무상(無常)하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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