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천 최병국 고문헌연구소 경고재 대표·언론인
유천 최병국 고문헌연구소 경고재 대표·언론인

엊그제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공정’이란 단어를 27차례나 했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공정하지 못하다는 뜻일 것이다. 여기에서의 공정은 서민들과는 거리가 멀다. 서민들은 특권을 누려 보려 해도 그런 위치에 있지도 못하고 권력도 재력도 없다. 대통령을 비롯해 소위 국정에 참여하고 있는 사회적 리더들에게 해당하는 단어다. 문 대통령은 우리 사회를 공정하게 개혁하기 위해서는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가 시급하다고 했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에서는 목숨을 걸고 반대를 하고 있다. 야당은 왜 공수처 설치를 반대하고 있나. 현재 집권당 민주당이 발의한 공수처 법안에는 대통령이 임명권을 가진 공수처장 후보는 2명이 최종 추천된다. 추천위원 7명 중 최소 6명의 찬성으로 후보가 추천된다. 추천위원 7명 중 2명이 야당 몫이기 때문에 야당이 반대하면 추천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여권이 지지하는 후보 1명과 야권이 지지하는 후보 1명이 추천될 수밖에 없도록 되어있다. 이 경우 최종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어느 쪽 후보를 지명할지는 자명한 일이다.

여기다 공수처 검사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했다. 공수처 검사는 재판이나 수사 경력 이외에 ‘조사 경력’이 있어도 되고 검찰 출신은 정원의 절반을 넘지 못하도록 했다. 여기에서 ‘조사’는 ‘세월호 조사위원회’나 ‘과거사위 조사위원회’도 포함 시키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럴 경우 현 정권의 ‘적폐청산’위원회들을 장악했던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출신 변호사들이 대거 장악할 우려가 높다. 현재 문재인 정부에 진출해 있는 민변 출신들을 보면 법무부의 비검찰화를 추진하면서 조국 전 장관이 뽑은 실·국장급 간부 4명 중 3명이 민변 출신이다. 법무부 과거사위원회도 위원 9명 중 위원장을 포함해 5명이 민변 출신이고 문 대통령 본인도 민변 출신이다.

며칠 전 서울에서 열린 공수처를 주제로 한 시민단체 토론회에서 “현 정권이 공수처를 ‘민변 검찰’로 만들려는 의도”라는 지적이 나왔다. 민변 출신으로 메워진 공수처가 수사권을 가진 ‘민변 검찰’이 될 수가 있고 공수처 검사의 직무기간도 9년까지 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공수처는 판검사와 경찰에 대해서는 기소할 수 있지만 대통령 가족과 청와대 수석, 장·차관, 국회의원 등 최고위 권력을 가진 고위직들은 기소를 할 수 없도록 해놓았다. 생업에 쫓겨 사는 국민은 공수처의 말뜻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데다 공수처 하면 대통령이나 청와대의 수석 비서관, 장·차관 국회의원들의 비리를 수사해 재판에 넘기는 것으로 통념상 알고 있으나 실은 이들은 모두 빠지고 판검사와 일부 직만 기소하도록 해 놓았다. 공수처가 사실상 ‘판검사 수사처’가 되는 셈이다.

매년 법원과 검찰 등을 상대로 한 고소·고발·진정 사건이 수십만 건에 달하는 상황에서 공수처가 이들 사건을 접수 받아 직권 남용 등으로 피소된 판검사들을 상대로 압수 수색과 수사를 할 가능성도 높다. 이럴 경우 권력기관을 감시하는 기구라는 당초 취지와는 달리 자칫 판검사들을 장악하는 절대적 권력기구가 될 수가 있다. 공수처는 또 검찰에서 진행 중인 수사 사건도 이첩받을 수 있다. 사례로 ‘조국 일가 수사’ 같은 사건도 공수처가 넘겨받아 수사를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 밖에 현역 군인 수사와 재판은 군이 자체적으로 한다는 원칙을 허물고 장성급은 공수처가 수사하도록 해놓아 자칫 ‘군 장악’까지 가능해진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원래 공수처는 역대 대통령의 충견 역할을 해온 검찰이 산 권력 비리를 제대로 수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정권으로부터 독립된 수사기관을 만들어 검찰 대신 수사를 맡기자는 취지로 1996년 참여연대가 첫 입법청원을 한 후 23년째 여야의 공수(攻守)가 바뀌면서 지금까지 표류되고 있다.

민주당이 발의한 이 공수처 법안에 대해 최근 법률전문가와 ‘조국사퇴’ 시국선언 교수단체가 ‘민변검찰’, ‘판검사 장악기구’, ‘헌법 위반’, ‘독재 수단’, ‘무소불위의 수사기관’이라며 반대 성명까지 발표했다. 조국 전 장관이 물러나니 공수처 설치가 검찰개혁의 주체로 등장해 또다시 국민이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공수처 설치 찬반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민주당의 공수처 법안은 집권 세력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만들어져 있다. 과연 누구를 위한 공수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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