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복차림 가을이 타고 있다.
하얀 재 가루가 몇 줌 씩
강물 위로 쏟아져 내린다
마음과 살을 모두 비운 누군가가 떠났나 보다

아침놀은 때로 울음일 때가 있다
물결이 잠시 어깨를 들썩이다 잠잠해진다
보트 위에서 한 사내가 가을을 감싸 안는데
강물은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다시
제 갈 길대로 아래로만 흘러간다.
나는 다시 붉은 아침놀 속을 걷는다




<감상> 아침놀은 소생을, 저녁노을은 소멸을 의미한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거대한 자연의 순환 속에 놓여 있을 뿐, 끊어지고 나뉘는 분절적인 의미를 지닌 것이 아니다. 자연은 말 그대로 촘촘하게 시간의 흐름 속에 놓여 강물처럼 흘러가고 흐트러짐이 없다. 인간은 자연의 흐름 속에 잠시 머물다가 떠나가므로 그 관계가 얼마나 엉성하고 허약한가. 가을날 누군가 마음과 살을 비우고 떠나갔기에, 붉은 아침놀은 울음으로 느껴지고 물결은 잠시 어깨를 들썩여 줄 뿐이다. 인간의 몸은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섭리에 따라 살다 가고, 자연은 그렇게 품어주고 무심히 흘러가고 있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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