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가 다스리는 나라는 작은데 신하들의 집안은 크고, 군주의 권세는 약한데 신하들의 권세가 무거우면 망국의 징조다. 군주가 함부로 처형하기를 즐기면서 법에 맞추어 하지 않고, 변설을 좋아하면 망한다. 군주가 고집을 부리며 화합할 줄 모르고, 간언을 듣지 않으면서 신하들을 이기려고 하며 경솔하게 자만에 빠지면 망한다. 군주가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나라가 혼란한데도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며 국내의 실정을 헤아리지 않으면 망한다. 나라가 작은데 겸손하게 낮추지 않고 힘이 약한데도 강한 나라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무례한 태도로 이웃의 큰 나라를 깔보고 탐욕스럽게 고집을 세우면서 외교를 서투르게 하면 망한다. 군주가 꾀를 부려 법을 왜곡하고 사적인 일로 공적인 일을 수시로 어지럽히며 법령과 금령을 쉽게 바꿔 명령을 자주 내리면 망하게 된다. 군주가 속이 좁고 성질이 급해 경박하게 일을 일으키며 성이 나서 앞뒤를 분간하지 못하면 망할 수 밖에 없다. 세도가의 천거를 받은 자는 기용되고 공을 세운 장수의 자제들은 내쫓기며 시골에서 좀 잘 하는 자는 천거되고 관직을 맡아 수고하는 자는 그만 두며 사사로운 행동을 귀하게 여기고 공적인 업적을 무시하면 망한다. 군주가 언변은 좋으나 법에 맞지 않고 머리는 뛰어나지만 법술이 없으며 재능은 많으나 법도로서 일을 처리하지 않는 것은 망하는 지름길이다. 군주와 가까운 신하는 승진하고 오래된 신하는 물러나며 어리석은 자가 정사를 맡고 현량한 이는 숨으며 공이 없는 자가 귀해지고 애쓰고 힘쓴 자는 미천해지면 아랫사람이 원망을 품게 된다. 아랫사람이 원망을 품으면 망하는 길로 접어든다. 나무가 꺾이는 것은 반드시 벌레가 속을 파먹었기 때문이고 담장이 무너지는 것은 반드시 틈이 생겼기 때문이다.”

한비자가 제시한 망할 징조인 ‘망징(亡徵)’이 우리 현실에도 경종을 울린다. 국론분열로 두 동강 난 국민 1%대로 추락하는 경제성장, 탈원전 대재앙, 고립무원 외교, 잇단 인사 참사 등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긍정적 평가를 앞선다. 문재인 대통령에겐 한비자의 망징이 발등의 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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