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개도국) 지위를 24년 만에 내 놓기로 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5일 “미래에 WTO협상이 전개되는 경우 개도국 특혜를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기가 됐다”고 밝혔다. 홍 부총리의 발언은 우리 정부가 개도국 지위 유지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다음달 열리는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방침을 확정할 계획이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7월 중국과 한국 등을 겨냥해 “비교적 발전된 국가가 WTO에서 개도국 지위에 따른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모든 수단을 강구하라”는 내용의 행정각서를 무역대표부(USTR)에 전달했다.

우리나라가 경제적 위상을 고려할 때 개도국 지위를 내 놓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지만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농업 부문에 제대로 된 대응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어서 충격이 클 수 밖에 없다. 특히 경북이나 전남·전북 등 농업인구가 많은 지역의 피해가 우려되는 것이다. 정부가 방침을 굳혀 농업보조금 감축과 외국산 쌀과 고추, 마늘, 양파 등 농산물에 대한 관세의 대폭 인하로 농업 분야의 비중이 큰 경북에 큰 타격이 불가피하게 됐다.

경북 농민단체들은 정부의 속내를 알 수 없다면서 미국과의 WTO 개도국 지위에 대한 협상 과정과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농업 보호 의지를 확실하게 천명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경북도에 따르면 내년도 정부 농업예산 1조 4000억 원 가운데 직불금은 2조2000억 원으로 약 14.3%다. 주요 선진국의 농업예산 대비 공익형 직불금 예산 비중이 스위스 82.3%, EU 71.4%, 일본 33.6% 수준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19.7% 수준, 그것도 변동직불금을 제외하면 10% 수준이다.

홍 부총리가 발표한 농업 대책으론 농업을 지키기 어렵다는 것이 농민들의 중론이다. 홍 부총리는 이제 와서 공익형 직불제를 조속히 도입하겠다고 했다. 또 내년 농업 예산을 최근 10년 내 최고 증가율인 4.4% 늘어난 15조4000억 원으로 편성하겠다고도 했다. 공익형 직불제는 문재인 정부 출범 때부터 언급했던 것이었지만 미뤄 오던 것이었고, 내년도 농업 예산 증가율 4.4%는 정부 전체 예산 증가율 9.3%의 절반도 되지 않는데 이걸 대책이라고 내 놓은 것이다. 정부가 내 놓은 다른 농법 대책들도 재탕 수준이다.

농민단체들은 ‘통상 주권을 포기하고, 농업주권을 포기한다는 선언’이라 반발하고 있다. 식량 자급률이 24%에 불과해 타당성 있는 주장이다. 정부는 식량 주권을 지키고 농업을 발전시킬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경북도의 주장처럼 정부예산에서 직불금비중을 농업예산 대비 20% 수준인 3조 원대로 확대하고, 농업재해 대상 품목도 전 품목으로 확대, 국비 지원비율을 현행 50%에서 70% 수준으로 하는 등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 수세적 대응보다 농업을 제조업처럼 세계적 수출 산업으로 키우는데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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