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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 운동 50년] 10. 경상북도, 대한민국 새마을 이끈다
[새마을 운동 50년] 10. 경상북도, 대한민국 새마을 이끈다
  • 박용기 기자
  • 승인 2019년 10월 29일 21시 30분
  • 지면게재일 2019년 10월 30일 수요일
  • 1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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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년 간 한결같이 '대한민국 새마을운동' 이끌어가는 경북도
경상북도 2019 새마을의 날 기념식. 경상북도
경상북도는 청도·포항 등 새마을운동 발상지와 새마을운동 중흥지 구미가 있는 명실상부 새마을운동 종주도(宗主道)로 지난 49년 동안 변함없이 새마을운동을 지속해서 추진해 왔다.

전국 광역지자체 중 유일하게 1973년부터 현재까지 새마을 과가 존속하고 있기도 하다.

새마을지도자대학과 새마을아카데미 운영으로 우수한 국내ㆍ외 새마을지도자를 양성하고 폭넓은 사회 활동을 통한 지역사회 활성화 공헌 및 저개발국의 빈곤 극복과 경제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78개국에 1181명의 대학생 해외봉사단을 파견했고, 53회에 걸쳐 1542명의 외국인을 초청해 새마을연수를 했다. (2007년~2016년)

또한 새마을전문대학원 학위 과정 지원을 통해 39개국 13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2009년 구미시에서 열린 대한민국 새마을박람회는 한국 고유의 국민운동·사회운동으로 세계가 주목하는 새마을운동 40년을 집대성하고 녹색 성장시대의 가치에 맞는 정신운동으로 비전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경북 23개 시군 지회, 331 읍면동에 새마을지도자 협의회, 새마을부녀회, 새마을금고 지부, 직·공장새마을 협의회 등 17만 4000명의 회원이 있다.

특히 새마을운동의 태동과 전개에 큰 역할을 한 청도군 신도1리와 영일군 (1995년 이후 포항시로 통합)기계면 문성리는 새마을운동 역사의 중심에 있다.

경상북도는 이 두 마을을 보존, 관리해 근대화의 원동력이 된 새마을운동 발상지의 역사성을 널리 알리는 한편 개발도상국과 해외 연수생에 새마을운동 성과와 정신의 우수성을 재조명하고 21세기 새마을운동 추진 방향을 제시하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해 ‘새마을운동 세계화’에 선도적 역할을 하도록 했다.

신도 마을을 방문한 새마을 지도자. 청도군
△청도군 신도마을

196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신도1리는 우리나라 다른 농촌과 같이 가난에 찌든 마을이었다. 새마을운동 기록 등에 따르면 마을에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온 인물은 김봉영 씨다. 김 씨는 토목과를 졸업한 뒤 부산에서 건설회사를 설립해 경영했으나, 조부모를 도와 농사를 짓기 위해 귀향한 뒤 고향 마을을 개발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귀양 후 1957년 마을 리장을 맡은 김 씨는 주민들과 힘을 합쳐 조림사업, 제방 공사, 지붕개량, 농로개발, 신거 간이역 설치, 전기가설, 감나무단지 조성 등의 시업을 벌었다.

주민들은 먼저 길을 넓혀야겠다고 생각하고 당시 마을 뒤쪽 골짜기 뒤실마을과 현재 위치인 새터 마을을 잇는 ‘토끼길’ 2.5km들 40여 일 만에 폭 4m의 농로로 만들었다.

1959년 부엌 개량, 축담 개축, 옥내장식 등 가정 가꾸기에 주민끼리 선의의 경쟁을 벌였다.
신도 1리 소하천 정비 모습. 청도군
1961년에는 부업장려 사업으로 가구당 감 묘목 50그루, 복숭아 10그루, 사과 1000그루 이상 갖기 사업을 시작했다. 1963년 생활개선구락부가 운영됐고, 1통장 갖기 운동, 새마을금고 육성 등이 이어졌다.

이런 사업을 전개한 결과 신도 1리는 살기 좋은 마을로 변모했다.

1969년 8월 고 박정희 대통령이 수해지역을 시찰하기 위해 부산으로 가던 중 청도군 신도리 마을에 전용 열차를 잠시 멈추고 잘 가꾸어진 마을과 수해복구 작업을 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보게 됐다.

그리고 이듬해인 1970년 4월 22일 부산에서 개최된 한해 대책에 관한 지방장관 회의에서 경산, 청도를 모범적인 마을로 소개했다.

또한 내무부가 발행한 ‘새마을총람’에 따르면 신도1리는 1972년 제1자 새마을 가꾸기 사업 평가에서 ‘자립마을’에 선정됐다.

신도리는 1970년 9월 대통령비서실이 간행한 ‘국토보전’ 화보의 표제 사진으로 실렸고, 다음 지면에도 마을 사람들이 몇 사람의 지도자를 중심으로 단합해 자조, 자립, 자위 정신으로 마을개발사업을 펼치고 성과를 거둔 마을로 소개됐다.

신도마을의 새마을운동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1970년부터 전국의 마을지도자 1000여 명이 견학하는 등 새마을운동의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지닌 곳이다.

문성리 마을 주민들이 마을 가꾸기 사업을 하고 있다. 포항시
△포항시(영일군)기계면 문성리.

제1차 새마을가꾸기 사업에서 가장 우수한 마을은 경상북도 영일군 기계면 문성리이었다.

영일군 기계면의 지도자 이석걸은 1971년 우수새마을 대회에서 다른 마을지도자 10명과 함께 국민포장을 받았다.

당시 영일군 기계면 문성리 이장 홍선표는 월간경제동향보고회에 참석해 새마을가꾸기 사업 성공을 보고한 뒤 국민포장을 받았다.

제1차 새마을가꾸기 사업이 끝나고 많은 사람이 훈포장을 받았지만 영일군 기계면 문성리의 성공은 그 당시 새마을 가꾸기 사업의 본보기가 됐다.

1971년 9월 17일과 18일 열린 ‘전국 시장 군수 비교행정회의’는 제1년 차 새마을가꾸기 운동의 성과를 살펴보고 향후 추진될 제2년 차 사업을 독려하기 위해 개최됐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문성리 마을에서 새마을 사업에 대한 사업추진상황을 보고받고 있다.포항시
전국 시장, 군수를 비롯한 355명이 참석한 회의 첫날 문성리 시찰에 나선 박정희 대통령은 변화된 문성리의 모습을 둘러보면서 다른 마을도 본받을 것을 지시했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문성리와 같은 마을을 만들어라’고 주문함으로써 문성리를 새마을가꾸기 운동의 모범사례로 제시했다.

이어 ‘자조·자립·협동 정신이 새마을 정신이다. 시장 · 군수는 새마을정신 주입에 점화역할을 하라’는 지시를 내림으로써 자조· 자립·협동이 새마을정신임을 밝혔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문성리 마을을 돌아보고 있다. 포항시
박 대통령은 문성리에 전화 사업을 우선으로 시행해 줄 것을 지시했다.

영일군 기계면 문성리의 성공은 새마을운동 성공에 반신반의하던 반대 논란을 잠재웠을 뿐 아니라 혁신적인 마을개선은 주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을 기반으로 할 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특히 마을지도자와 주민의 단결이 사업의 성공을 좌우한다는 것을 증명한 사례이기도 했다.

이런 의미에서 문성리의 성공은 새마을 가꾸기 사업의 대표적인 성공모델이다.

문성리의 성공을 직접 목격한 전국의 시장, 군수는 새마을가꾸기 사업에 적극적인 관심을 끌게 되었고, 새마을운동을 전국적으로 빠르게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새마을 운동 테마공원. 구미시
△새마을 테마파크 공원, 새마을 중흥지 구미.

구미시는 새마을 종주 도시로서 다양한 비전을 제시해왔다.

잊혀 가던 새마을운동 정신 부활을 시작으로 다각적인 학술연구 등을 통해 현시대에 걸맞은 모습으로 새롭게 계승하고, ‘대한민국 새마을박람회’라는 대규모 행사를 통해 새마을 운동의 역사·문화·정신을 집대성하는 전환점을 마련했다.
경상북도 2019 새마을의 날 기념식. 경상북도
또한 2018년 11월 개관한 새마을운동 테마공원은 새마을운동에 대한 전시, 교육, 체험, 휴양기능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새마을운동을 한자리에서 보고,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을 구축한다.

새마을운동을 겪지 않은 세대에게는 새마을운동과 새마을 정신을 체험하고 배울 수 있는 교육의 장이 되고, 새마을 운동을 겪은 세대에게는 새마을운동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켜 신세대와 새마을운동에 대해 교감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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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기 기자 ygpark@kyongbuk.com

김천,구미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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