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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의 숲] 포항 기계 서숲
[경북의 숲] 포항 기계 서숲
  • 글·사진=이재원 경북생명의 숲 고문
  • 승인 2019년 10월 30일 21시 45분
  • 지면게재일 2019년 10월 31일 목요일
  •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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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홍수·겨울 찬바람 막아주는 마을 주민들의 든든한 울타리
기계 서숲

예부터 걸출한 인물이 많이 난다는 포항시 북구 기계면은 뛰어난 자연경관과 함께 적지 않은 문화재가 있는 곳이다. 고려 시대 때부터 정일품 벼슬인 ‘태사’를 세 명이나 배출한 흔치 않은 고장이라고도 하며, 풍수적으로 큰 인물이 나는 명당이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정·재계를 비롯해 사회 전 방위에서 활동하는 기계면 출신의 인사가 많다는 얘기도 종종 듣게 된다.

풍수학에 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이러한 얘기를 들으면 왠지 이 지역에 흐르는 고고한 선비적 기질과 유무형의 전통에 관한 계승 의지가 크다는 것에 충분히 공감하게 된다. 기계면을 비롯해 이웃하는 죽장면이나 기북면은 우리 포항에 드물게 남아있는 전통 고택이나 전통 유산이 많다. 특히 기계면 현내리에 위치한 도원정사와 기계 서숲이 그러하다.

도원정사

도원정사는 경주(월성)이씨 기계 입향조인 이말동 선생(1443~1518)을 추모하기 위해서 그의 후손들이 지은 정자이다.

선생은 성종 때 성균관 진사가 됐다가 연산군의 폭정에 정계를 떠나 이곳에 은거하면서 마을을 개척하고 후학을 가르쳤다고 한다.

정자는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이곳에서 내다보는 주변 풍경이나 사계절이 바뀌는 모습을 관조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곳이다. 그런데 선생의 호가 ‘도원(桃源)’, 즉 복숭아꽃이 만발한 낙원을 뜻하는데, 이 말은 흔히 별천지나 이상향을 비유하는 데 쓰인다. 바로 중국 송나라 때 시인인 도연명이 쓴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신선들이 산다는 곳으로, 조정을 떠나 이곳 기계면에 당도한 선생은 세상과 담을 쌓으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선생은 혼자만의 무릉도원을 꿈꾼 것이 아니라 이 땅에 발을 디딘 채 세속의 사람들과 더불어 좀 더 나은 세상을 그리셨다고 봐야한다. 이러한 추측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기계 서숲 때문이다.

도원정사

선생이 이곳에 와보니 여름이면 기계천이 범람해 가옥이 물에 잠기고 한 해 농사가 망치는가 하면, 겨울에는 북서쪽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으로 마을 사람이 고생하는 것을 보니 가만히 계실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비록 은둔자의 길로 들어섰지만 몸소 관할 기관에 나서서 문제의 심각성을 호소하고 마을 주민들을 설득해 제방을 쌓고 인공 숲을 만들게 했다. 그렇게 해서 어느 순간 마을 사람들이 홍수와 바람의 피해에서 벗어나게 한 기계 서숲이 이뤄지게 된 것이다. 서숲은 도원정사에서 나와 기계장터를 지나 기계고등학교를 따라 걷다 보면 만나게 된다.

그런데 역으로 신작로에서는 도원정사를 찾아가려면 애를 먹을 수도 있다. 수차례 기계면을 지나다녔지만 그 어디에도 ‘도원정사’라는 표지판 하나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마을 사람이라 해서 누구나 도원정사를 아는 눈치는 아니었다. 젊은 아낙네나 몇몇 촌로 분들도 모르는 걸 보니 말이다.

그나마 운 좋게 대로변에서 목욕탕을 운영하는 주인에게 물어서야 위치를 알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분이 도원정사에 관한 자부심이 대단했는데, 알고 보니 이 목욕탕 주인도 도원정사의 문중이며 도원 선생이 기계에 오신지 500년 가까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덧붙이며 컴퓨터로 도원정사 위치를 상세하게 설명해준 친절함까지 선사했다.

그렇게 신작로를 벗어난 기계면의 골목길은 사뭇 달랐다. 어릴 적 편안함을 주던 동네 골목을 다시 걷는 기분이라고 할까. 그렇게 골목을 걷다가 오래된 고택을 만나게 됐는데 그 기품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영일 기천고택’으로 경상북도 문화재로 지정된 곳이다. 문이 닫혀있어서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대문 하나만으로도 고택의 위용과 아우라를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6.25 전쟁 때 기계면의 전통가옥이 대부분 소실되었다고 하는데 유독 이 집만 남은 것은 어쩌면 우연은 아니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게 영일 기천고택을 지나쳐 안쪽 골목으로 더 들어가면 도원정사에 이르는 탁 트인 너른 공간으로 이어지고 소나무 사잇길을 거닐게 된다. 원래 기계 서숲과 동숲은 큰 규모를 이뤘을 것이고, 도원정사와 마주한 서숲 또한 그 위세가 상당했을 터이다. 비교적 다른 마을숲에 비해 기계 서숲은 인공적인 시설물이 그리 많지 않으며, 더욱이 도원정사와 연결된 나지막한 산세의 풍경이 더없이 포근하게 느껴졌다.

도원정사 앞에는 연못이 하나 있는데 그 주변 노거수가 가옥의 운치를 한껏 살린다. 역시나 우리 선조들의 미학적 안목에 탄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여기 도원정사에서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된다. 은행나무, 향나무, 소나무 노거수들이 이곳의 내력을 말해주는 것 같다. 특히 200~300년은 족히 돼 보이는 배롱나무들은 다른 세상에 온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간 우리 포항에 고택이 없다는 것을 아쉬워했는데, 이곳 기계를 몰라서 든 생각이라고 본다. 왜 이런 곳이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다는 게 놀랍다가도 이제야 이런 곳이라도 남았다는 게 고마울 정도다.

이렇게 우리 고장의 마을숲은 저절로 생겨난 것도 아니며, 도원정사의 품격과 정원의 아름다움 또한 저절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이 땅을 살피고 미래를 내다본 선조들의 지혜와 안목이 숲을 만들었고 마을을 보호했기에 우리는 이러한 아름다운 유산을 마주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기계 서숲 인근에 있는 동숲은 관리가 잘 안 돼 있다. 농지개간, 도로정비 등으로 훼손이 심해서 지금은 숲의 모습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렇게 숲이 망가진 상황을 대할 때면 사람이 사는 환경이 황폐해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사람의 마음마저 피폐해진다고 본다. 사실 옛날의 기계는 사람 냄새가 물씬 나던 곳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목월의 ‘기계 장날’과 같은 시가 나왔을 리가 없지 않았을까.

박목월 시비

그렁 저렁/그저 살믄/오늘같이 기계(杞溪)장도 서고/허연 산뿌리 타고 내려와/

아우님도/만나잖는가베/앙 그렁가 잉/이 사람아.(중략)

오늘 같은 날/지게 목발 받쳐 놓고/어슬어슬한 산 비알 바라보며/

한 잔 술로/소회도 풀잖는가./그게 다/ 기막히는기라/다 그게/ 유정한기라.

- 박목월, ‘기계장날’ 시집 <경상도의 가랑잎>(1968) 중에서

이 시를 읽으면 소박한 시골 사람들의 인정 어린 대화가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다. 우리 고장 말씨가 참 정겹다는 것도 물씬 느껴진다. 또한 목월의 시에서 그려진 기계 장날의 풍경도 소중한 우리의 유산이다. 하지만 지금 기계 장터는 예전의 활기를 거의 찾아보기가 힘든 상황이다.

하동군의 ‘화개장터’가 가수 조영남의 노래로 사람들에게 각인되는 것처럼 우리도 기계장터를 알릴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한산한 버스터미널을 바라보니 기계장터를 그저 아름다운 시구로만 간직하게 된 지금의 상황이 좀 씁쓸하다.

글.사진=이재원 경북생명의 숲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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