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원 화인의원 원장
이재원 화인의원 원장

내년 총선이 반년도 남지 않았다. 공직선거법 상 선거일 180일 전이면 선거관련 일정한 행위들을 금지하고 있기에 공식 선거일정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아마 지금쯤이면 현역 정치인이든 정계 입문을 꿈꾸는 정치신인이든 나름대로 다가올 선거를 대비해 전열을 가다듬느라 물밑 움직임이 활발할 것이다. 각 정당 역시 올 연말 국회 일정을 마지막으로 본격적인 선거체제로 돌입하고 나면 온 나라가 바야흐로 선거정국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하는 일 없이 분란만 일삼았던 기억밖에 없는 20대 국회가 다가올 선거에서 어떤 국민적 심판을 받게 될지 벌써 궁금해진다.

돌이켜 보건대 이번 20대 국회는 우리나라 정치역사에서 중요한 변곡점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에 대한 국회탄핵이 이루어졌고, 사회 각 분야에 대한 개혁의 필요성을 만천하에 드러내는데 직·간접적으로 기여(?)한 바가 크기 때문이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야 전 국민적 저항에 직면해 마지못해 이뤄진 측면이 없지 않다 하더라도, 국회임기 내내 보여준 정치무능은 우리사회가 정치개혁 없이는 그 어떤 사회변혁도 불가능하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제대로 된 법안처리 하나 제때 한 적 없이 허구한 날 막말로 정쟁만 일삼았던 국회가 아니던가. 그런 무책임한 정치실종 탓에 광장으로 모여들 수밖에 없었던 국민들이 아무리 ‘공정’과 ‘정의’를 외쳐도 이를 입법으로 뒷받침하려는 노력은커녕 오히려 사회적 분열만 조장하기에 급급했던 정치권이었다. 따라서 다른 어떤 분야의 개혁보다 법과 제도 마련의 최종책임을 지닌 정치 분야의 개혁이 최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걸 우리는 이번 20대 국회를 통해 뼛속까지 알게 되었다. 하지만 정치개혁의 요체라 할 수 있는 선거제도 개선에 대해 정치권 일부에선 국회법으로 금지된 물리적 저항도 마다않고 여태 몽니를 부리고 있는 실정이다. 스스로 만든 법을 어긴 것도 모자라 정당한 정치행위라는 궤변으로 합당한 수사마저 회피하고 있다. 심지어 범법행위 소지가 다분한데도 물리력 행사에 가담한 소속 의원들에게 공천 가산점을 주겠다는 황당한 소리조차 늘어놓고 있다. 정치권에 대한 개혁의 시급성이 너무도 잘 나타나는 대목이다. 현재 패스트트랙 법안으로 올려 져 있는 선거제도 개선안이 그 내용의 완성도를 떠나서 반드시 처리되기를 희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현역정치인들의 불출마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주로 다선 중진의원들과 현직 장관들 사이에서다. 이미 할 만큼 한 중진의원들이야 오히려 늦은 감이 들 정도니 논외로 치더라도 이제 막 청치인생을 시작한 초선의원들의 불출마 선언은 조금은 의외다. 한 번 당선되고 나면 영혼을 팔아서라도 자리보존을 하려는 정치인들을 숱하게 봐 온 터라 기득권을 내려놓으려는 이들이 신선하기까지 하다. 다만, 정치권 밖에서 바라보는 유권자의 입장에서 ‘지옥을 맛봤다’는 그들의 하소연이 그저 푸념으로만 들리지는 않는다는 게 서글플 뿐이다. 베버가 말하길 ‘정치란 열정과 균형감각 둘 다를 가지고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뚫는 작업’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제공하려는 것에 비해 세상이 너무나 어리석고 비열하게 보일지라도 이에 좌절하지 않을 사람, 그리고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능력이 있는 사람, 이런 사람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누구는 ‘책임을 지려 한다’는 자세로 정치일선에서 떠나려 하고, 정작 책임져야 할 다른 누군가는 아직 채워지지 않은 개인적 정치욕망으로 끝까지 남으려 하는 정치상황을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된다.

정치권은 지금 우리사회의 최우선 개혁대상이지만 동시에 모든 분야의 개혁주체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정치개혁의 주체는 다름 아닌 유권자라는 사실이다. 선거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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