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난 날에도 볕들지 않는
그 골목엔
생각난 듯, 자주 비가 내리고는 하였다
빗물의 뒤꿈치를 타고
그늘이 흘러 다녔다

나기만 하는 그 자리, 새 집 또 들어선 날
말할 수 없는 나는 말 못 할 마음으로
며칠 전 엎어져 있던 막사발을 떠올린다

세상엔 늘 슬픔이 몸을 바꿔 찾아오고
마른날도 여지없이 빗줄기
들이치는데 / 눈물이 향하는 곳을
우린 말할 수 없다

소리가 지워진 환한 유리창 너머
새로 돋은 별처럼 젊은 주인은 웃고
문밖엔 까만 어둠이
머뭇대며 / 서 있다




<감상> 굴곡진 골목은 볕이 들지 않아 어둡고, 자주 비가 내리는 듯하고, 그늘이 흘러 다니는 듯하다. 지붕은 길과 눈높이를 자주 맞추고, 동네 전체가 하나의 지붕 아래 둥지를 튼 것 같다. 거대한 지붕 아래 구멍을 엮어놓은 듯, 말하지 않아도 눈물의 의미를 알고 방향을 짐작할 수 있다. 투박한 막사발을 엎어놓은 듯, 말 못할 마음으로 서로의 적막을 이해할 줄 안다. 너무 적막하여 소리가 지워지고, 너무 어두워서 별이 유난히 반짝인다. 새로 돋은 별처럼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는 날이 많아 시끌벅적한 골목이었으면 좋겠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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