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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광장] 상상 속의 약자
[아침광장] 상상 속의 약자
  • 손화철 한동대 교수
  • 승인 2019년 11월 03일 16시 32분
  • 지면게재일 2019년 11월 04일 월요일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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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화철 한동대 교수
손화철 한동대 교수

사람에게 있는 여러 가지 놀라운 능력 중에 자기를 속이는 능력이 있다. 남에게 하는 거짓말은 도덕적 비난을 받지만, 그 거짓에 본인도 속고 있을 경우 자신에겐 참말이니까 비난하기도 애매하다. 그러나 여전히 사실이 아니기에 자신을 속이는 일도 대개 남에게 피해를 준다.

자기를 속이는 거짓말 중 고약한 경우가 스스로를 약자라고 상상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그렇게 약하지 않고 사실 강자지만 상상 속에서는 약자가 되어 스스로에 대해 연민을 품는다. 당연히 그 상상 속에 강자로 지정된 자도 있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집주인이 세입자를, 부자가 빈자를, 교수가 학생을, 고용인이 피고용인을 강자라 칭하고 스스로 약자가 된다. 약자니까 상대방에게 시정을 요구하는 것이 당연해지고 책임질 일은 적어지며, 상대에 대한 분노와 실망을 마음껏 키운다.

스스로를 속이는 사람의 힘은 그 ‘진정성’에 있다. 진심은 이상한 호소력을 가지고 있어서 남들에게 전염되고 설득력을 가진다. 그래서 스스로 약자라 상상하는 사람이 진심으로 괴로워하면 다른 사람들은 그를 불쌍히 여기게 된다. 그리하여 세입자가 집주인을 이해하고 빈자가 부자의 편을 들며 피고용인이 고용인을 동정하는 황당한 상황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것이다. 울면 떡 하나 더 주게 되는 것이 사람 마음이라지만, 실컷 먹고 진심으로 서럽게 울어서 동정까지 요구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악독한 갑질이다.

사실 진짜 약자의 비애는 자신의 약함과 억울함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다. 취업 준비생은 자신의 꿈과 희망을 자소서에 발랄하게 적어야 하고, 일용직 노동자는 밝게 웃어줘야 한다. 목숨을 걸고 고공농성을 하면 생떼를 쓰는 것이 되고 자식의 억울한 죽음을 신원하라 하면 시체장사를 한다고 한다. 반면 상상 속의 약자는 자신이 얼마나 불쌍하고 딱한지를 온 천하에 알리는 데 주저함이 없고 그 한탄을 전달할 통로도 많다.

선거로 바꿀 수 있는 정권이 ‘살아있는 권력’이라서 애써 맞설 용기를 내고 있다는 철밥통 검찰, 신나게 가짜뉴스를 찍어내며 표현의 자유를 결연히 지킨다는 언론과 유투버, 상속할 재산은 너무 많지만 노조의 등쌀에 너무너무 괴롭다는 대기업, 연구원에게 자식 숙제나 시키고 인건비는 빼돌리는 와중에 학생 눈치 보기 바쁘다는 교수, 성차별 농담을 하면서 입조심이 괴롭다는 상사… 이렇게나 불쌍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날마다 언론과 SNS에 떠돌고 여기에 진심을 담은 호소력까지 더하니 온 천지가 피해자로 가득 차 버렸다.

허기를 상상하는 사람도 스스로에게 속는 거니까 나름대로는 거짓말의 피해자다. 진심으로 배가 고프다는데 입을 막을 수야 없다. 하지만 이미 먹은 건 먹었다고 밝히고 배고프다 해야지, 자신의 기득권은 쏙 빼고 스스로 약자가 되어 있는 상상 속의 이야기만 되풀이하는 것까지 참아줄 필요는 없다. 나아가 그 상상에 의거해서 자신의 기득권을 더 강화하라고 요구하면 단호히 거절해야 한다.

상상 속의 약자에게 사실은 당신이 강자라고, 정신 차리라고 가르쳐 줄 방법이 없을까? 그런 건설적인 희망은 버리는 게 좋다. 아무리 좋게 타일러도 자기를 구박한다고 더 서러워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설득하는 데 에너지를 쏟기보다 잘 들리지 않는 진짜 약자의 목소리를 찾는 것이 더 생산적이다. 상상 속의 약자가 너무 시끄럽게 굴면, 그를 진짜 확실한 약자로 만들어 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들의 기득권을 모두 빼앗아 진짜 약자가 되면, 상상이 현실이 되어 더 이상 자기를 속일 필요도 없을 테니까. 그리고 약자들은 조용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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