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지나도 변함없는 가치 전통·문화 대를 잇는 '안동 소주'

조옥화 명인(가운데)과 전수자인 아들과 며느리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있는 고장 안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통 중 하나가 안동소주다. 안동에 손님이 찾아오면 갈 때 으례히 손에 건네주는 선물이 안동소주다. 오래 두고 마실수록 부드러운 맛을 더한다. 오랜 친구를 만난 듯하다.

이러한 안동만의 선물을 만든 장본인이 민속주 안동소주의 조옥화(97·여) 명인이다. 그녀는 1987년 경북 무형문화재 제12호로 2000년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20호로 안동소주 기능 보유자에 이름을 올렸다.

안동지역 여성단체 태동초기부터 여성운동가로 활동이 두드러진 조 명인은 향토음식전 등을 통해 안동음식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는데 기여했다. 1960년대 꽃꽂이가 생소하던 시절 여성들을 모아두고 문화강좌를 시작, 여성 계몽운동의 첫 발을 디디고 국군 장병들을 방문하러 다니면서 김장, 옷 뒷바라지도 했다. 제대로 여성운동을 하려니 전용공간이 필요했고 이에 의견을 투합해 민간 최초의 여성회관 건립을 주도하기도 했다. 2000년 경북도 장한여성상과 2005년 자랑스런 안동시민상을 수상했다.

누룩을 빚고 있는 김연박, 배경화 전수자

조 명인은 1983년부터는 지역 고유의 술을 만들자고 결심하고 친정집에서 배운 가양법과 시집에서 배운 가양법 중 장점만 골라 전통적인 안동소주 복원에 도전, 마침내 성공한다. 1987년 5월 13일 경상북도 무형문화재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1990년 9월 안동소주 제조 면허를 취득하면서 안동소주를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깊고 진한 향을 가진 증류식 안동소주가 처음 제품으로 나왔을 때는 사람들이 안동소주를 사기 위해 제조장 앞에서 새벽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을 벌이기도 했다. 1993년에는 현재의 위치(안동시 수상동)에 새로 양조장을 개설해 본격적으로 안동소주를 생산했다. 2000년에는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20호로 지정됐다.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 까지 민속주 안동소주를 생산하고 있는 것은 며느리인 배경화(68) 전수자와 아들 김연박(73) 전수자가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속주 안동소주는 지금도 누룩을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술 맛을 결정짓는 누룩을 직접 만들고 좋은 쌀과 맑은 물로 소주를 빚으니 좋은 맛을 낼 수밖에 없다. 누룩을 직접 만드는 정성과 좋은 재료로 알코올 함량 45%의 안동소주를 고집하고 있다.

명인 조옥화 안동소주.

안동소주는 통밀을 갈아 누룩을 띄우는데 누룩 사이에 국화를 넣어 향을 낸다. 그리고 시루에서 멥쌀로 고두밥을 찌는데 속까지 익도록 잘 쪄야 술맛이 좋으며 탁주처럼 걸지 않고 소주 양도 많이 난다. 찐 밥은 밥알 하나하나까지 잘 식혀 누룩가루와 물을 혼합해 항아리에서 3주 정도 발효시킨다.

발효가 끝나면 전술이 되는데 이 전술을 소줏고리로 증류하면 이슬 같은 안동소주가 나오는데 처음 나온 술은 알코올 함량이 70%에 이르고 차츰 도수가 낮아진다. 며느리인 배경화 전수자는 “안동소주는 곡주여서 고량주와 비슷하지만 마신 뒤 향기가 입안에 은은하게 퍼져 입안을 개운하게 해 주며 45%의 고도주인데도 담백하고 숙취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특히 안동소주는 오래 보관할수록 풍미가 더욱 좋아지는 장점을 가졌는데 이는 여러 번 되풀이되는 연속 증류방식으로 만들어지면서 불순물이 완벽하게 제거됐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가치가 변치 않는 것을 우리는 명가명품이라고 합니다. 전통의 문화를 자랑하는 안동에서는 조옥화 민속주 안동소주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경북 무형문화재 제12호인 조옥화 민속주 안동소주가 2015년 ‘대한민국 명가명품’ 대상을 받았다. 수상식에서 조옥화 여사를 대신해 아들 김연박 사장이 수상했다.

명가명품 대상으로 선정되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심사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단일 품목으로 시장의 선두를 일정 기간 꾸준히 지키고, 기존 제품보다 기능이나 성능이 탁월하며, 국내 혹은 세계 최초로 개발 생산에 성공한 제품이어야 가능하다. 조옥화 안동소주가 명가명품으로 대상으로 선정된 데에는 대한민국 식품명인인 조 여사의 숨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안동소주박물관 내부

아들 김연박(안동소주박물관장) 씨와 며느리 배경화 씨는 안동소주박물관, 전통음식박물관을 이끌며 민족문화의 정통성을 계승·발전시키는데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건설회사에 다니던 김 씨는 회사와 안동을 오가며 어머니의 안동소주 제조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술독, 소줏고리 등 어머니가 쓰시던 술 제조 도구도 차곡차곡 모았다. 신라 시대 토기잔에서부터 조선 시대 연회도같이 술과 관련된 유물도 수집했다. 어머니가 음식상을 차리면 음식을 차에 싣고 부랴부랴 서울로 올라가 모형을 만들어 왔다. 당시 안동에서는 음식의 색과 모양을 그대로 재현할 만한 모형제작업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궁중의 수라상, 제상, 회갑상, 돌상, 계절별 주안상 같은 상차림이 재연됐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생일상차림도 모형을 떴다.

안동소주박물관을 방문한 중국관광객

아들은 안동소주와 전통음식 관련 자료 670여 점을 모아 1995년 안동시 수상동에 박물관을 세웠다. 어머니의 뜻을 잇기 위해 회사생활을 접고 고향 안동으로 내려왔다. 그는 소주공장을 짓고 술 제조법 현대화에 나섰다. 어머니는 혀로 맛을 봐 소주의 45도 도수를 맞췄지만 아들은 이를 기계화해 표준화시켰다. 어머니의 술 빚는 감각을 따라갈 수 없으니 그 방법밖에 없었다.

시설은 현대화했다지만 여전히 전통적인 방법으로 누룩을 빚고 고두밥을 만들고 술을 만들어 소주를 내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부인 배경화 씨도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뒤 안동에 내려와 시어머니로부터 소주 제조법을 전수 받고 기능 전수자가 됐다.

조옥화 명인의 우수성은 해외 왕실에까지 전해졌다.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1999년 4월 21일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했을 때 조 명인은 영국 여왕의 73회 생일상을 차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어 20년 후인 올해 5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차남인 앤드루(59) 왕자가 자신의 어머니가 안동에서 받았던 생일상을 그대로 받았다.

생일상은 20년 전 그때 그대로 재현했다. 유자화채·숭어만두·삼색북어보푸리·미나리강회 등 전통음식까지 모두 47가지 음식이 상에 올랐다. 상 차림은 김행자 안동예절학교 청소년수련원장이 주도했다. 김행자 원장은 1999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생일상 차림에 나섰던 안동소주 기능보유자 조옥화 명인의 장녀다. 조옥화·김행자 모녀가 대를 이어 차린 셈이다.
 

오종명 기자
오종명 기자 ojm2171@kyongbuk.com

안동 담당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