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시월 중순에 2주간 시간을 내어 아내와 함께 북구 6개국을 다녀왔다.

러시아의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와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에스토니아 등을 주마간산 격으로 훑어보고 온 셈이다.

계절로는 완전히 늦은 가을이거나 초겨울이었다. 높은 곳에는 하얗게 눈이 쌓여 있었고, 눈비가 대중없이 내리는 기후였다.

끝없어 보이는 평원, 자작나무 숲, 쪽쪽 곧은 소나무 숲, 곳곳에 산재한 맑고 큰 호수, 빙하가 만들어 낸 길고 깊은 협곡의 피요르드 해안이 눈길을 끌었다.

인구밀도에 비해 넓은 땅이 탐이 났으며, 사회복지제도가 잘 되어 있는 나라.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들이라는 가이드의 말에 귀가 기울여졌다. 오기를 잘했다는 마음으로 자연환경과 사람 사는 모습을 살펴보았다.

날씨는 연일 질퍽거렸지만 평온한 분위기에 늦가을 풍경이 눈길을 끌었다. 높은 산도 없는 언덕, 주로 자작나무의 단풍이지만 어우러진 노란 단풍이 푸른 호수와 어울려 아름다웠다. 일행들이 감탄사를 연발하였다.

그러나 나에겐 그만큼은 아니었다. 북구의 가을은 그대로의 정취가 있었지만 한국의 가을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감 홍시가 햇빛을 속속들이 머금어 아른거리듯이 붉은 단풍잎에 스며든 햇빛이 투명하게 고운 한국 산야의 단풍에 비할 수 있으랴. 홍과 황과 청이 어우러졌으면서 제각각 선명하게 제 색깔을 뽐내는 아름다움에 견주랴.

그러나 한국 가을의 아름다움을 다른 곳에서 찾아보고 싶다.

펄벅 여사가 경주를 여행하는 차 안에서 바깥을 내다보다가 늦가을 시골 마당의 감나무 끝에 달린 감 여남은 개를 보고 “따기 힘들어 그냥 두는 거냐?”고 물었고 동승한 이규태 기자가 “까치밥이라 해서 겨울새들을 위해 남겨둔 것”이라고 설명하자 펄벅 여사는 “바로 그거예요. 제가 한국에서 보고자 한 것은 고적이나 왕릉이 아니었어요. 이것만으로도 난 한국에 잘 왔다고 생각해요”라며 탄성을 올렸다고 한다.

펄벅 여사는 조금 뒤 가을 들판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소달구지를 보고 또 놀랐다고 한다. 소가 힘들어할까 봐 달구지를 타지 않고 지게에다 볏단을 짊어진 농부가 소와 함께 걸어가는 모습이었단다.

가을 들판에서 힘들게 일한 소와 농부. 자신의 피곤함을 알고 역지사지로 소의 고됨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농부의 아름다운 마음에 감동한 것이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대문호인 펄벅 여사가 한국에 보내는 애정의 선물로 1963년 출간한 ‘살아있는 갈대’ 첫머리에 “한국은 고상한 사람들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라고 극찬한 것은 날짐승과 소까지 배려한 한국인의 고운심성에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었으리라.

펄벅, 미국인이지만 동양인을 사랑했던 여인. 자신의 딸이 정신지체와 자폐증 환자였기에 더 마음 아픈 아이들을 사랑으로 품은 어머니. 그러기에 전쟁고아들을 위해 미국에 최초의 동양계 고아원 ‘welcome house’을 세웠고, 가을 녘 한국 방문에서 느낀 감동으로 1964년 전쟁 후 태어난 혼혈고아 2000명을 위한 ‘소사 희망원’을 새워 1974년까지 운영하였고, 그 자리에 ‘펄벅기념관’이 세워졌다. 마음이 넉넉해진다.

풍성한 결실의 아름다움, 4계절의 뚜렷한 구분 속에 선명한 단풍의 아름다움, 그 속에 사는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들.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가을을 맞았어도 세상 분위기가 뒤숭숭하기만 한 요즘. 대문호 펄벅 여사가 한국의 가을에 남긴 진한 사랑의 발자취와 한국 사회사업에 바친 공적을 기리며, 정이 넘치는 진정한 가을의 아름다움에 젖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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