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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쓴 약 먹기 싫듯, 충고 듣기 싫지만 들어야 한다
[기고] 쓴 약 먹기 싫듯, 충고 듣기 싫지만 들어야 한다
  • 한정규 문학평론가
  • 승인 2019년 11월 05일 16시 15분
  • 지면게재일 2019년 11월 06일 수요일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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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규 문학평론가
한정규 문학평론가

병이 들면 약을 먹고 병원을 가야 하듯 하는 행동거지가 정의롭지 못하고 인간의 도리가 아닌 짓을 하면 바르게 잡도록 충고가 필요하다.

힐티는 ‘충고가 하얀 눈과 같아서 조용히 말할수록 마음속에 깊이 스며든다’라고 했다. 충고를 한답시고 상대를 업신여기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함부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며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충고라기보다는 잘 못만 지적 단순히 꾸짖는 것이다.

충고나 컨설팅할 때 고자세로 인신공격적인 언행을 보인다면 그런 컨설팅은 충고는 제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듣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충고는 하는 것도 듣는 것도 쉽지 않다. 충고라 하면 보통은 솔직하고 겸허하게 듣지 못한다. 때문에 충고를 할 때는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해야 한다.

충고를 들을 때는 당신이 무엇인데 감히 나더러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는 거야? 그건 아니지 남 충고는 그만두고 자기나 잘하지 그렇게 반발부터 한다. 그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충고 겸허하게 듣고 생각해 보는 것이 올바른 태도다.

요즘 사람들 어른과 아이 너나없이 충고 듣는 것 싫어한다. 그래서 잘 못된 것을 보고도 충고하려는 사람이 별로 없다. 충고하지 않는다. 충고 듣고 싶지 않지만 겸허하게 귀를 기울이면 자기 자신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

충고에는 무엇인가 반드시 얻을 것이다. 자기 단점을 본인은 잘 모른다. 그래서 충고가 필요하다. 그리고 충고를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하다. 충고를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 좋은 것만은 아니다. 생각해 보면 불행한 일이다.

공자의 언행과 문인과의 문답 논평을 기록한 공자가어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 충고는 귀에 거슬리지만 그것에 따른다면 반드시 도움이 된다’ 라고 쓰여 있다. 충고의 필요성과 충고에 대한 올바른 자세를 강조한 대목이다.

과학 문명의 발달로 20세기 후반 이후 물질이 풍부해지고 삶이 다양해지며 직장 따라 고향을 떠나 곳곳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도시를 이루고 살다 보니 서로가 서로를 잘 알지 못하면서 같은 공간에서 산다. 그래서 잘못을 깨우치지 못하고 일상이 돼버린다. 어쩌다 잘못을 주변에서 지적하기라도 하면 그마저 듣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잘못을 보고도 그건 아닌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충고 같은 것 하지 않는다. 방관한다.

학교에선 적지 않은 선생들이 학생들의 잘 못된 언행을 접하고도 못 본 척, 못 들은 척 피하고, 사회에선 사회질서를 해치는 언행을 듣고 보면서도 모두가 모르는 척한다. 그래서 인간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도리마저 상실 제멋대로다. 옳고 그른 것을 모른다. 한 마디로 인륜도덕이 실종돼 버렸다.

충고 듣는 것도 하는 것도 귀하디귀한 희귀한 것이 됐다. 정의로운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서슴지 않고 충고를 하고 또 듣는 것을 부끄러워하며 들어야 할 충고는 반겨 들어야 한다. 그리고 고칠 건 고쳐야 한다.

인간은 신이 아니다. 살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사는 것이 인간이다. 충고 미처 배우지 못한 것에 대한 가르침이다. 직위 고하 재물의 유무를 떠나 충고는 세상 모든 이에게 필요하다. 대통령에게도 때론 국민들의 충고가 필요하다. 할아버지가 세 살 난 손자에게 배운다는 속담이 있다. 배운다는 것 자기 발전을 위하는 것으로 조금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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