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어머니, 고향, 첫사랑과 같은 원초적 단어들은 늘 그리움과 아쉬움의 대상이 된다. 그 단어들은 오랜 기간 우리 안에서 발효(醱酵)의 시간을 갖는다. 고향에 대한 작가 김훈의 소감도 그런 ‘발효된 언어’ 중의 하나다.

“나는 고향에 관한 사람들의 그리움 섞인 이야기나 문학과 유행가 속에 나오는 고향 이야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들을 경멸한다. ‘증오한다’라고 쓰려다가 ‘경멸한다’라고 썼다. 내 고향은 서울 종로구 청운동이다. 그 먼지 나는 거리에서 나는 자랐다. 그리고 나는 내 ‘고향’에서 길 하나 건너간 곳에 있는 회사에서 밥을 번다. <중략> 자라서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자, 나는 ‘고향’이란 육친화된 어느 산이나 강물이나 논두렁 밭두렁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 있을 어떤 보편적인 아늑함과 넉넉함의 공간이라고 믿게 되었다.” <김훈, 『풍경과 상처』>

김훈은 서울내기다. 서울을 고향으로 둔 사람들은 산업화의 부작용 중의 하나인 고향 상실의 최대 피해자다. 이제 서울은 다른 곳에 고향을 둔 사람들의 영원한 객지로만 존재한다. 인정도 없고 이야기도 사라진 무정하고 각박한 이해타산의 공간으로만 존재한다. 그런 실향민 의식을 지닌 이의 입장에서 고향타령이 반가울리 없다. 서울만큼은 아니지만 대구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내게도 대구 주변의 고향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전혀 없다. 나도 ‘먼지 나는 거리’에서 자랐고, 마찬가지로 그곳에서 길 두어 개 건너간 곳에서 밥을 벌고 있다. 그렇지만 그와 다른 게 있다. 김훈은 ‘육친화된 공간’으로서의 고향을 부정하는 입장이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그가 ‘육친화된 산이나 강물이나 논두렁 밭두렁’이 아니라 마음속의 ‘보편적인 아늑함과 넉넉함의 공간’을 고향이라고 믿는 것과는 다르게 나는 외재(外在)하는 공간으로서의 환경, 실물로 존재하는 친밀하고 익숙한 땅과 하늘, 길과 집들이 고향이라고 믿는다.

내게는 장소애(場所愛)로서의 ‘고향’이 여러 개 있다. 애착(집착)의 대상으로서의 고향이 복수로 존재한다. 줄잡아 네댓 개는 된다. ‘고향’이 그렇게 다중(多重)적으로 존재해도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현실이 그런 걸 어쩔 수 없다. 병이라 해도 하는 수 없다. 나이도 들 만큼 들어 잘 달래서 같이 갈 수밖에 없다. 살아온 시간 순으로 그것들을 열거해 보자면 ①서울시 서대문구 정동 일대와 제주도 구좌읍 김녕리, ②대구시 중구 대신동 일대, ③마산시 자산동 일대, ④대구시 중구 대봉동 일대 등이다. ①은 김훈의 표현대로라면 ‘육친화된 공간’이 아니라, 관념적 무의식적 친애 공간이다. ‘정동 22번지’는 아버지가 이남에 내려와서 호적을 만든 곳으로 내 ‘본적’이 된 곳이고 ‘김녕리’는 피난지이자 출생지다. 유년기를 보낸 곳이다. ②③④는 내 기억이 살아서 발효되는 곳들이다. ‘대신동’은 소년기, ‘중앙동’은 청소년기 전반, ‘대봉동’은 그 후반의 주 무대였다. 서울과 제주도는 두어 편의 단편적인 장면으로만 남아 있다. 그러나,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의식이 처음 생성된 곳이 서울 언저리에 살던 때라는 것은 분명히 기억한다. 마산과 대구는 서로 경쟁한다. 마산서 살 때는 대구가, 대구서 살 때는 마산이 그리움과 아쉬움의 대상으로 존재한다. 어쨌든 그곳들은 항상 젖어미나 되는 것처럼 ‘보편적인 아늑함’으로 나를 감싼다. 요즘 들어 고향이 육체에 예속된 것이라는 느낌이 자주 든다. 앞서도 말했지만 여러 곳 내 고향들은 서로 연적(戀敵)관계다. 한 몸에 머물면 다른 몸이 질투한다. 마음속의 그리움이라기엔 너무 육체적이다. 처음부터 그랬고 지금까지도 그렇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