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강마을
저물녘 꽃 냄새 물큰하여라
어릴 적 우리 동네 물가에서도
같은 냄새가 났지
동무들 모여 꽃 내음 속에 말뚝박기하는데
봉숭아빛 불 켜진 조선족 민가에서
엄마 목소리 들리네 / 웬수야 저녁 먹어라
아들은 강변 갈숲에 앉아
BTS 듣느라 정신없는데
유람선 타고 마실하는 남녘 사람들
비닐봉지에 쪼코파이랑 치약이랑 USB 넣어
강 건너 북녘땅으로 던진다네
개망나니 아베와 시진핑과 트럼프가 함께 악머구리 춤추며
8천만 한반도 들들 볶는데
알전구 불빛들 촉촉하고
물큰한 꽃향기 속 다급한 엄마 목소리 들리네
웬수야 저녁 먹어라 / 내 웬수야 저녁 먹어라




<감상> 국경 조선족 마을이나, 어릴 적 우리 마을에는 어슬녘 꽃냄새가 진동하고 엄마의 저녁 먹으라는 소리가 멀리서도 흑백사진처럼 들린다. 해지고 파랑이 몰려오면 공기가 슬몃슬몃 가라앉고, 고요가 몰려오기 때문이다. 집이 쓸데없는 소리를 잡아먹고 잡음을 걸러내어 맑은 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국경지역에서 북녘 땅을 바라보는 시인은 엄마의 목소리가 들릴 듯한 풍경 속에 빠진다. 하지만 국경을 가로막는 강대국들은 이 목소리마저 차단하고 만다. 이 웬수들은 어머니의 애정 어린 웬수처럼 저녁 먹으라는 소리에 경계를 지을 수 없나. 저녁 먹으라는 소리에 우르르 달려가서 한 집에 모여서 같은 꽃향기를 맡을 수는 없나.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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