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에서 자란 호박 덩굴이 옆집
담을 넘어 들어오더니 밤나무를 타고 올라가
나뭇가지 끝에 연두색 호박을 매달아 놓았다
호박은 공중에서 하루하루가 다르게 커졌다
밖에서 담을 넘어 들어왔으니
옆집에서 심은 것은 아니지…

그러니까 긴 골프우산 손잡이를 담 너머로 뻗쳐서
호박을 끌어다가 따 먹을 수도 있는 거야
하지만 누구에게 들키지 않는다 해도
시쳇말로 다툼의 여지는 있겠지 이를테면
옆집 영감이 투덜거리는 소리를 피할 수 없을 걸
요즘도 호박 도둑이 있는 모양이여…

늦장마 지나가고 매미와 풀벌레 소리 요란한
오늘도 옆집 밤나무 가지에 매달린 호박을
바라본다 따먹고 싶은 욕심일랑 몽땅 버리고
짙푸르게 익어가는 호박 그 자체만 바라볼 수는 없을까
가을이 가버리기 전에 그렇게 될 수 있을까



<감상> 호박 넝쿨이 담을 넘고 나무 타고 올라가 허공에서 열매를 맺는다. 그럼 이 호박의 주인은 누구의 것인가. 집주인의 것인지, 나무의 것인지, 종자를 심은 이의 것인지 서로 자기 것이라 주장할 것이므로 소유권의 다툼으로 이어질 것이다. 과욕이 지나치면 중상모략하고, 급기야 법정 다툼까지 이어진다. 오솔길도 자기의 땅이라고 일제의 잔재처럼 말뚝을 박고 길가는 사람을 막는 세상이 아닌가. 옛적 사람들은 자신의 땅을 양보하여 오솔길을 만들고 땅을 일구며 살았다. 소유권을 따지기 전에 여름 햇살과 곤충 소리와 똥의 힘으로 자란 호박 그 자체만 볼 수 없는가. 일생이 다 가버리기 전에.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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